'고려·조선시대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

지난 6일 서울·부산·대전·전주 등 전국 4개 도시 주요 대학교에서 진행된 현대자동차그룹 하반기 대졸자 공채 인·적성검사 응시자들은 마지막 6교시 시험에서 뜻밖의 문제를 받아들고 당황했다.

제시된 문제는 '고려·조선시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와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나 들고, 그 결정의 아쉬운 점, 자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지, 그렇게 결정했을 때 후세에 미칠 영향 등을 서술하라'는 것 두 가지였다. 두 문항 중 하나를 선택해 30분 동안 1000자 이내로 서술하는 '역사 에세이' 문제였다. 현대차그룹 입사 시험에 역사 문제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10만여명의 응시생 모두에게 역사 에세이 문제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여러 계열사 중 현대자동차에 지원한 응시자에 한해 이 문제가 주어졌다. 시험이 끝난 뒤 응시생들은 취업시험 후기 사이트 등에 "자동차 상식을 물을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족보'에서 역사 문제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당황했다"는 등의 반응을 올렸다.

현대차 신입사원 채용시험의 역사 에세이 문제는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다. 전문성과 기능적인 실력만이 아니라 인문적인 소양, 인성(人性)을 중시하는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할수록 자국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철학 등 인문적인 소양을 갖춘 인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단숨에 판매량 세계 5위 기업으로 도약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을 이해하고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바탕이 튼튼한' 인재가 필요해졌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인재채용팀 관계자는 "역사 에세이 답안은 객관식 문제 채점하듯, 또는 대입 논술 채점하듯 점수화하지 않을 예정"이라면서도 "하지만 마치 면접에서 대면하듯 응시자의 종합적 사고 능력과 통찰력을 볼 수 있는 문항이기 때문에 당락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인문학적인 소양을 중시하는 것은 신입사원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기존 사원들을 대상으로도 역사 강좌를 열고 있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이 직원들의 역사적인 소양을 넓히는 데 관심이 많다고 한다. 정 부회장 지시로 지난 3월부터 본사에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역사 강좌가 신설됐다. 일명 '어제에서 내일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히스토리 콘서트'로,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을 초청해 한국 근현대사와 미술사, 서양사, 그리스·로마 역사, 중국·아중동 역사 등에 대해 20회에 걸쳐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정 부회장은 평소 이공계 출신 비중이 높은 회사 분위기를 감안해, "해외 업무가 많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자동차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와 세계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며 그룹 차원에서 문화와 역사 가르치기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한성권 인사실장(부사장)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는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올바른 역사관, 국가관, 기업관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볼 예정"이라며 "현대차에서 근무하고 싶은 취업 준비생이라면 평소 책과 신문을 많이 읽고 가치관을 정립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