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회사인 대부업체가 대기업 계열사 자금 세탁 기구로 변칙 운용된 것이 동양그룹 사태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업체에 대한 또 다른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양그룹 계열 대부업체인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사흘에 한 번꼴로 CP를 발행해 계열사 자금 지원 통로를 하면서 정작 서민대출은 모두 합쳐 수십억원에 불과해 본말이 전도된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업체가 진입 요건도 느슨하고 관리감독도 소홀하다는 점을 이용해 '대부업' 간판만 걸어둔 채 대기업의 'CP 공장' 역할을 한 것이다.

◇무더기 CP 발행해 계열사 지원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지난해 4월부터 올 9월까지 1년 6개월간 사흘에 한 번꼴로 총 5058억원어치의 CP를 발행했다. CP를 하루에 7번 발행한 날도 있었고, 만기 5~7일짜리 초단기 CP도 상당수 있었다.

금액도 최소 1억원에서 최대 80억원까지 다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파이낸셜대부가 발행한 CP는 시중으로는 유통되지 않고 전량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계열사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 등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CP 외에도 대여금, 일반대출 등의 형식으로 동양파워,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티와이머니대부, 동양생명 등 계열사로부터 1조4999억원의 자금이 동양파이낸셜대부로 들어갔다가 1조5443억원이 계열사들로 다시 빠져나갔다. 올 들어서도 2분기까지 동양파이낸셜대부는 동양인터내셔널과 동양레저에 각각 1300억원, 1800억원을 빌려줬다.

동양그룹이 동양파이낸셜대부를 자금 돌려막기의 창구로 활용한 이유는 대부업체가 금융사로 분류되지 않아 금감원의 감독권이 미치지 않는 데다, 비상장사여서 공시 등의 의무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동양파이낸셜대부가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아 자금 거래 비용이 저렴한 이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레저와 인터내셔널이 지난달 초까지 B등급을 받은 반면, 동양파이낸셜대부는 A3-등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양 사태로 동양파이낸셜대부도 결국 문을 닫게 될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가 없고 피해자도 없기 때문에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속 사각 대부업체, 대기업 자금 회전 창구로 악용

동양 사태로 인해 대기업 계열 대부업체 역할에도 다시 한 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대기업 집단을 지정하는 4월 기준으로 올해는 4개 그룹이 대부업체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동양그룹이 동양파이낸셜대부와 티와이머니대부 등 2곳을 거느리고 있고, 현대중공업그룹(현대기업금융대부), 효성그룹(이노허브파이낸셜대부·6월 계열사에서 제외), 부영그룹(부영대부파이낸스)이 각 한 곳씩 가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출액 규모로 현대기업금융대부가 업계 18위, 동양파이낸셜대부가 20위였다.

대부업체는 지난 2002년 음성화된 사(私)금융을 제도권으로 끌어낸다는 취지로 대부업법이 제정되면서 양지로 나왔다. 사채업자를 중심으로 누구나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만 하면 대부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 계열 대부업체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는 고전적인 대부업을 하지 않는다. 동양그룹 사태에서 보듯 그룹 내부의 자금을 회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부업협회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주로 기업 자금 운용을 위해 설립됐다는 것 외에는 내부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들 대기업 대부업체들이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업체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고, 일부 대형 업체에 대해서만 금융감독원이 지자체의 위탁을 받아 검사를 실시한다. 그런데 금감원은 부실해졌을 때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파장이 작다는 이유로 대기업 계열 대부업체에 대해서는 검사를 거의 실시하지 않고 있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들이 여신금융회사가 필요할 때 캐피털사를 차릴 수 있는데도 굳이 대부업체를 차리는 것도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대부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검사하더라도 대부업체가 부정 대출을 했는지 여부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