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3개월 안에 회사가 망하겠어요? 만약 그룹이 위험해지면 동양증권까지 나설 테니까 문제없다'면서 투자를 권유했어요. 특정금전신탁이나 CP(기업어음)가 뭔지도 잘 모르는 내게 노란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 주면서 여기에 사인하라고 해서 그대로 했을 뿐이에요."

작년 말부터 지난달까지 특정금전신탁 가입을 통해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의 CP에 총 1억1000만원을 투자한 김모(27·여)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미공단의 전자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김씨는 9년간 모은 돈을 몽땅 잃을 위기에 놓였다. 김씨는 "대학생이 되고 싶어 월급(200만원)을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이라고 울먹였다.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CP·회사채 불완전 판매 문제가 또 불거지고 있다. 불완전 판매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비롯해 LIG그룹과 웅진그룹, STX그룹 등 각종 부실 금융 사태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불완전 판매란 금융회사가 상품의 기본 구조와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이다.

"우편으로 상품 가입서 보내고 형광펜 칠한 데 사인하라고 해"

지난 7월 동양그룹 CP에 6000만원을 투자한 김모(48)씨는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권유 전화를 받고 '창구에 갈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가입 신청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며 "신청서에 사인할 5곳이 형광펜으로 표시돼 있었다"고 했다.

본인과 부인·아들 명의로 2억3000만원어치 CP·회사채에 가입한 윤모(66)씨는 "8월 만기 연장 때 불안해서 물어봤더니 직원이 '그룹이 동양매직 매각을 추진 중인데 사려는 기업이 많다. 동양시멘트의 발전소 부지를 팔면 그룹이 정상화된다'고 해서 그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동양증권 CP 투자자 중엔 60~70대 고령자가 많다. CP 투자자 남모(72)씨는 "깨알 같은 글씨로 상품 가입서에 써놓고 말로는 안전하다고 하면 증권사 책임이 없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하나은행 PB사업부 방효석 변호사는 "최근 법원은 금융사의 설명 책임을 좀 더 무겁게 보고 불완전 판매의 개념을 폭넓게 적용하는 추세"라며 "상품 설명을 제대로 안 했거나 그룹의 위기를 축소 설명한 경우, 고령자에게 적합지 않은 상품을 판 행위 등이 법정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이 지난 추석 연휴 직전까지 동양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을 판매한 것과 관련, 불완전 판매 여부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동양이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발행한 CP를 산 투자자들은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에 따라 투자금을 날릴 처지에 놓였다.

피해자들의 공동 대응도 본격화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가칭 '동양그룹 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 2일 1010명 명의로 서울 중앙지법에 "현 회장 등 현재 경영진을 법정관리인에서 배제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동양시멘트 관할 법원인 춘천지법엔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해 달라"는 투자자들의 탄원서가 몰리고 있다.

불완전 판매가 금융 민원 1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3만8661건이었던 금융권 민원은 올 상반기 4만2582건으로 10.1% 늘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 및 부당 권유 관련 민원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증권회사 중에서는 동양증권이 지난해와 올 상반기 모두 민원 건수 1위를 차지했다. 금감원 소비자보호처는 "동양증권은 회사채와 신탁 상품 판매 시 위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민원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불완전 판매 여부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법정에서는 기억에 의존하는 직원과 투자자의 말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증거로 사용될 녹취록을 투자자가 확보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는 상품 투자에 대한 위험과 함께 고객의 사인이 담긴 가입 서류가 더 강한 법적 효력을 지니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1년 LIG건설의 사기성 CP 피해자들이 제기한 불완전 판매 소송 15건 중에서 12건은 증권사가 이겼다. 당시 직업이 변호사인 투자자는 소송에 지고, 반대로 고령으로 은퇴한 상태였던 투자자는 이긴 사례가 있다. 법원은 "투자자의 30년 법조 경력을 감안하면 직원의 설명이 불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불완전 판매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홍콩에선 투자자가 아닌 금융회사에 상품 권유 과정을 녹음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불완전 판매

고객에게 금융 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의 구조, 원금 손실 여부 등 주요 내용에 대해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판매하는 행위.

불완전 판매 여부는 고객과 직원의 대화 내용 등을 근거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와 법원이 판단한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불완전 판매의 입증이 쉽지 않고 확인되더라도 회사와 고객에게 과실 책임이 나뉘는 경우가 많아 원금을 100% 되찾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