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금융감독원의 기업 구조조정 담당 부서에서는 "동양그룹이 이대로 CP(기업어음)와 회사채로 연명하도록 하는 것은 투자자들이 '폭탄 돌리기'를 하도록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증권사 영업을 감독하는 쪽은 입장이 달랐다. "투자자들이 고금리를 노리고 동양그룹 CP와 회사채에 투자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금감원 내부가 이처럼 혼선을 빚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동양그룹 계열사인 동양증권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1조3300억원어치나 팔아치웠다. 금융 당국의 부실, 늑장 대응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운 것이다.

동양그룹은 1일 그룹의 모태이자 주력 계열사인 동양시멘트까지 법정관리를 신청, 사실상 공중분해 수순에 들어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채 비율이 1200%가 넘는 그룹의 계열사들이 CP와 회사채를 일반 투자자들에게 팔아치울 때 금융 당국은 뭘 하고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동양증권의 계열사 CP·회사채 대량 판매 수수방관

금융 당국은 동양증권이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의 CP와 회사채를 팔면서 사실상 동양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지난달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사의 CP와 회사채가 동양증권 창구를 통해 판매된 금액은 2011년 말(잔액 기준) 1조5500억원, 2012년 말 1조7100억원, 2013년 9월 29일 현재 1조3300억원이다. 지난 2년 9개월간 1조5000억원 정도의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돌려 막기'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금감원은 지난 3년간 동양증권을 4차례 검사하면서 매번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양증권이라는 회사의 건전성만 점검하고, 이 회사가 팔고 있는 막대한 물량의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가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이라는 것은 감지하지 못한 셈이다.

늑장 대응도 문제다. 금융 당국은 동양그룹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던 지난 4월 금융회사가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마련했다. 하지만 6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면서 오는 26일부터 시행되도록 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동양증권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규제라 '동양증권법'이라고 불렸지만, 시행되기도 전에 동양그룹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투자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시장에서는 '사후약방문'이라는 비아냥이 나오지만, 금감원은 "6개월간 시행을 유예한 것이 피해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강변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 4월에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의 CP 규모가 7321억원이었다"며 "바로 시행됐으면 전부 투자자 피해로 돌아갔겠지만, 그동안 발행 규모를 4586억원(9월 29일 기준)까지 줄여서 피해를 축소했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눈감은 금융 당국

금융 당국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문제다. 위험도가 높은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를 산 개인 투자자들의 책임도 있지만, 애당초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금감원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회사채는 증권신고서를 사전에 내고 공시해야 하는 등의 규제 절차가 있지만, CP는 기업이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어 당국이 어쩔 수 없다"면서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자본잠식 상태인 것은 전부 공시가 돼 있는데도 투자를 한 개인 투자자들이 이제 와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금융회사 등 기관투자자들에게는 "투기 등급의 CP를 아예 보유할 수 없다"는 내용의 내규를 만들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하지 못하게 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위험하다'는 신호조차 제대로 보내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금감원이 동양증권 관련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양증권은 지난 2001년 동양현대종금과 합병해서 만들어졌고, 지난 2011년 11월 종금사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이후 원금이 보장되는 '종금형 CMA(자산관리계좌)'를 판매할 수 없게 됐다. 동양증권은 "종금사 영업이 끝났으니 투자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고지를 기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금감원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