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53) 회장 형제의 횡령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은 누구인가? 오는 27일 최 회장 형제의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지만 김씨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재 대만에 도피해있는 그에 대해 SK그룹은 극도의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업계에서 김씨의 개인 스토리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SK측은 변론이 끝난 지금까지도 "김씨에 대한 대한 증인신문이 필요하다"고 재판부에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SK그룹 수사가 시작되던 2011년 초 중국으로 도주한 김씨는 지난 7월 31일 대만 현지에서 붙잡혔다. 체포 순간에는 최재원(50) SK그룹 부회장이 김씨와 함께 있었다.

최태원 회장은 이 사실을 알고 옥중에서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한 SK그룹 임원은 “최재원 부회장은 최근까지도 김원홍에게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란 미련을 가지고 대만에 찾아간 것 같다”며 “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면회를 간 임원에게 ‘이젠 김원홍과 관계는 완전히 끊었다. 최 부회장을 포함한 전 경영진이 자숙하라’며 화를 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 회장 형제의 1심 단계에서는 거의 부각되지 않았으나 항소심 단계에서 횡령 사건을 기획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최태원 회장은 법정에서 “김씨와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부끄러워 이제야 진실을 말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최 회장이 관계를 숨기려고 했던 그는 어떤 인물일까.

지난달 31일 대만 경찰에 의해 전격 체포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

◇투자금 불려준 ‘무속인’

최 회장은 1999년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을 통해 김씨를 알게 됐다고 한다. 10년 간 한달에 1~2번씩 만나면서 관계를 유지해왔다. 최 회장 형제는 김씨를 집안 웃어른처럼 받들었다고 한다. 최 회장은 자신보다 한 살이 어린 김씨에게 깍듯이 존대말을 썼다. SK그룹 고위 간부 사이에서 김씨의 별명은 ‘묻지마 회장님’이었다. 지시하면 이유를 묻지도 말고 바로 이행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명한 ‘무속인’이었다. 특정 날짜의 주가를 소수점까지 예측한다는 얘기가 떠돌 정도였다. 글로웍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됐던 김준홍(47)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의 보석 날짜를 맞춘 적도 있다고 한다. 최 회장은 법정에서 “김씨가 주가·환율, 미 연준 이자율에 정통했고 덕분에 나도 열린 시야로 경영할 수 있었다”며 사실상 ‘경영 멘토’였음을 인정했다.

최 회장은 100억원을 주면 300억~400억원으로 불려오는 김씨의 투자 수완에 반했다. 2005년부터 선물·옵션 투자금 6000억원을 김씨에게 건넸다. 김씨는 2008년 중순에도 최 회장에게 1000억원을 더 받아냈지만, 지금까지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지 않았다. 2008년 10월에는 최 회장 형제와 김원홍, 김준홍씨가 얽힌 450억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중국 상하이로 도피했으며, 상하이 교민 사회에서도 푸둥(浦東)지구에 조용히 은둔해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거물처럼 행세해온 김씨는 평소 비서 5~6명을 데리고 다녔는데, 한국에 남아 있던 자식과 비서진을 모두 중국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한국에 상당 기간 안 들어올 생각으로 작심하고 건너갔다는 얘기다. 이후 대만으로 옮겨갔는데, 그 과정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김원홍은 평소에도 1년에 절반 정도를 중국에서 지내기 때문에 중국 생활에 별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김씨는 대만에서도 상당히 거물처럼 하고 다녀 눈에 띄었다고 한다. 비싼 차 몰고 비서들 죽 거느리고 다니다보니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대만 지역 사회에서도 소문이 좀 났고, 대만 당국에도 노출된 것 아니냐는 게 업계 측의 시각이다.

경북 경주 출신인 김씨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증권사 영업 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분당에 살면서 롤스로이스를 굴리고 다녔다. 그는 한때 "SK 그룹은 사실상 내꺼다. 내손으로 움직인다"고 떠들고 다녔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최 회장 돈으로 ‘보험깡’ 벌인 정황

김씨의 측근들은 김씨가 최 회장에게 받아낸 돈으로 속칭 ‘보험깡’ 비용을 댔다고 주장했다.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는 김씨는 거액의 보험에 가입하고 설계사 몫으로 돌아오는 수당을 미리 한꺼번에 챙긴 다음 일정 시점이 지나 보험을 해약하는 수법으로 자금을 융통했다는 것이다. 김씨의 보험깡 내역을 안다는 한 관계자는 “2008년 가을엔 김씨가 매달 내야할 보험료가 100억원에 달했다”며 “최 회장이 자금을 끊어 보험료가 연체될 위기에 놓이자 김준홍씨와 짜고 SK계열사 자금을 송금받았다”고 주장했다.

최태원 회장은 작년 6월 이후로 김원홍과 관계를 청산했다. 최 회장은 김씨에게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독촉하면 김씨가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며 자신이 운영한 투자금 실적과 거액의 통장을 보여주면서 안심시켰다고 했다. 결국 최 회장은 실제 SK그룹의 지주회사와 다름없는 SK C&C 지분을 제외한 전 재산을 김씨에게 보내고 돌려받지 못했다. 최 회장은 법정에서 "스스로도 (김원홍에게)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며 "제가 뭐에 홀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김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김씨, 대만에서 허위고소로 국내송환 저지

대만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김씨는 체포된 지 사흘 만인 지난 8월 2일 뤄위저우(羅宇舟)라는 현지인으로부터 사기 혐의로 타이베이(臺北) 검찰청에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뤄씨는 대만 검찰이 자료를 검토하고 소환 조사에 나서려 하자 곧바로 고소를 취소했다. 현지 관계자는 "김 전 고문이 한국에 가면 100% 구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귀국을 피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씨는 현지에서 저명한 여성 변호사를 선임하고 현지인을 동원해 허위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김원홍 전 고문은 이번 사건을 기획·연출·실행한 주체인데, 제대로 된 수사나 법정 증언도 없이 사건이 마무리된다면 실체적 진실 규명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장 내일 들어온다고 해도 (김씨를)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김씨의 증언을 대신할 수 있는 녹취록을 이미 증거로 채택했고 최태원 회장의 구속 시한이 이달 30일 종료돼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