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위기설이 현실화되면서 투자금을 떼일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동양증권 창구로 몰리고 있다. 동양그룹의 부실 계열사들이 발행한 기업어음(CP)을 매입한 투자자뿐 아니라 동양증권 창구를 통해 일반 투자상품에 가입한 고객들도 동요하고 있다. '펀드 런(고객들이 앞다퉈 돈을 빼면서 금융사가 부실해지는 것)' 우려가 제기되자 24일 금융당국이 "일부 상품을 제외하면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와 동양증권을 통한 투자는 무관하다"고 투자자 진정시키기에 나섰다.

동양증권사 이틀간 투자금 2조원 빠져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가 본격 제기된 23일에 이어 24일에도 전국 동양증권 창구에는 "가입 상품을 해지하겠다"는 고객들의 항의성 문의가 쇄도했다.

금융당국과 업계 등에 따르면 23일에만 동양증권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서 6000억원가량이 인출됐고, 24일에는 7000억원가량이 인출됐다. 동양증권 CMA 가입액(지난 17일 기준 7조7000억원)의 20% 정도가 이틀 동안 빠진 것이다. 펀드 등을 포함하면 인출금액은 2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주가연계증권(ELS)·파생결합증권(DLS) 등 일반 금융상품에 가입한 고객들과 동양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서 주식 거래를 하는 고객들도 "내가 맡긴 돈이 어떻게 되는 거냐"며 문의했다.

특히 동양증권에서 권유한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해 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이 발행한 기업어음(CP)을 매입한 고객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쳤다.

CMA와 특정금전신탁은 증권사가 고객이 맡긴 돈을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용되는데, CMA는 증권사가 투자처를 정할 수 있고 특정금전신탁은 고객이 지정(특정)한 대로 증권사가 투자해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특정금전신탁은 CP 등에 폭넓게 투자하지만, CMA는 국공채 등 안전성이 높은 자산을 중심으로 운용돼 비교적 손실 위험이 적다. 그럼에도 가입자 총 344만명의 동양증권 CMA(W-CMA) 가입자들까지 공포감이 확산된 것이다. 즉시 인출이 가능한 CMA의 특성상 가입자들의 동요가 컸다. 금융감독원은 김건섭 부원장이 오전 10시쯤 간담회를 갖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날 오전까지 이어졌던 CMA 등 인출 사태가 오후 들어서는 다소 진정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CMA는 무관, 특정금전신탁은 피해 있을 수도"

금융감독원의 설명을 종합하면 동양그룹 계열사 CP를 매입한 고객을 제외하고 일반 상품에 투자하거나 동양증권을 통해 주식 거래를 하는 고객들의 돈은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김건섭 부원장은 "전체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동양증권을 통해 투자된 자금과 증권은 한국증권금융과 한국예탁결제원에 100% 예치된 상태"라며 "(그룹의 자금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이를 동양 측이 담보로 잡거나 인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CMA 특성상 100% 지급 보장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증권사는 CMA를 운용할 때 고객이 맡긴 돈으로 국공채·환매조건부채권(RP)·예금 등을 사는데, 이렇게 산 투자 자산들은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증권금융, 수탁(受託)은행 등이 보관한다. 증권사가 임의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동양증권이 운용하는 특정금전신탁의 가입자는 총 3만2000여명이다. 이 중에서 1만5900명은 총 4564억원어치의 동양그룹 계열사 CP를 보유하고 있다. 금감원은 "다른 금융회사에서 가입한 특정금전신탁에 동양그룹의 CP가 포함돼 있을 확률은 극히 낮은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동양증권은 건당 10억~20억원으로 개인투자자에게 판매가 어려운 CP를 개인투자자에게 쪼개 팔기 위해 '특정금전신탁'이란 수단을 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동양증권 특정금전신탁 고객은 가입 시 작성한 신탁계약서와 상품설명서를 통해 동양그룹 부실 계열사 CP 보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동양증권이 CP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상품 내용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금감원은 "불완전 판매가 이뤄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상품 위험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다"면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만약 동양그룹 계열사가 망하면 법원이 채권 지급 우선순위를 고려해 지급액을 결정하며, 투자금의 전부 혹은 일부를 돌려 받는 데 통상 8개월~2년 정도가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