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베리

‘스마트폰의 원조’로 불리던 블랙베리(Blackberry)가 회사 매각에 들어갔다. 한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면서 애플과 각을 세우기도 했던 블랙베리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헐값 매물 신세가 됐다.

◆ 블랙베리 “우리 회사 팝니다”

블랙베리는 23일(현지시각) 캐나다 보험회사 페어펙스파이낸셜홀딩스가 47억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 협상은 미완성 상태다. 페어펙스파이낸셜은 블랙베리의 지분을 특정 가격에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사실만 밝혔을 뿐이다. 페어펙스파이낸셜과 블랙베리는 약 6주간 기업실사를 거쳐야 하고, 그 6주간에 블랙베리는 계속해서 다른 투자업체들을 물색할 수 있다. 페어펙스파이낸셜은 자사가 제출한 인수 의향서에 대해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기업실사가 끝난 후 인수 의향을 철회해도 된다.

업계에선 블랙베리가 협상 초기 단계에서 인수 협상자와 가격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블랙베리가 빠른 시일내에 회사를 살리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하는 상황에서, 몸값을 높이기 위해 인수 가격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페어펙스파이낸셜은 블랙베리의 주식 10%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페어펙스파이낸셜은 나머지 지분을 주당 9달러에 인수할 의향을 밝혔다. 블랙베리의 주식은 지난 2008년 149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지금은 약 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 정상 달리던 블랙베리, 순식간에 추락

블랙베리의 회사 매각이 성공적으로 이뤄져도 이 회사의 스마트폰 사업 전망은 불투명하다.

블랙베리는 지난 20일엔 임직원 4500명을 해고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전체 임직원(1만2700여명)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로 기존 스마트폰 사업을 거의 접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 블랙베리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작년부터 꾸준히 인력을 줄여왔지만 새롭게 내놓은 스마트폰 신제품들이 시장에서 거의 조명을 받지 못하면서 수억달러의 적자를 면치 못했다. 블랙베리는 이번 분기에 스마트폰 재고 때문에 약 10억달러를 손실 처리했다고 밝혔다.

블랙베리

1999년 당시 리서치인모션(RIM·블랙베리의 옛 사명)이 내놓은 첫 블랙베리 제품은 무선 호출기였다. 회사는 2002년 이메일과 메시지를 보내는 검은 단말기 형태의 블랙베리를 출시했다. 컴퓨터 키보드를 그대로 가져온 ‘쿼티’ 키보드를 탑재해 업무용 휴대전화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블랙베리는 북미 정계·재계·금융계에서 필수품으로 떠올랐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용해 ‘오바마 폰’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내에선 2006년에 블랙베리가 처음 들어왔다. 당시 KT파워텔은 기업을 대상으로 블랙베리 7100i 단말기와 함께 무선 인터넷을 통해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솔루션도 제공했다. 기업용 제품에만 주력하던 회사가 일반 소비자용 블랙베리를 내놓기 시작한 것도 2006년이다. 2007년 한창 회사가 잘 나갈때는 시가총액이 700억달러에 달했고 2008년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이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면서 블랙베리는 경쟁자를 만나게 됐다. 블랙베리도 아이폰을 본따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블랙베리 스톰’을 처음으로 출시했지만 시장 평가는 냉정했다. 2009년까지만해도 블랙베리는 미국 스마트폰 시장(운영체제 기준)에서 iOS와 안드로이드를 앞질렀지만, 올들어서 미국내 점유율은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블랙베리는 올해 초 사명을 ‘리서치인모션’에서 ‘블랙베리’로 변경하고 전면 터치 스크린을 채용한 블랙베리Z10 스마트폰도 출시했다. 하지만 이미 애플과 삼성전자가 독식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을 역전시키기엔 부족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2년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블랙베리는 4.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30.4%, 애플은 19.4%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