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재 단장은

1961년 경기 김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했다. 영국 맨체스터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포스텍 교수를 거쳐 1993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8년 서울대 벤처 1호인 에스엔유(SNU)프리시젼을 설립했다. 2005년 코스닥 상장 당시 주식 10만주(80억원 상당)를 서울대 공대에 기부해 화제를 모았다. 황창규 단장 후임으로 올 4월 R&D전략기획단장으로 부임했다. 현 R&D 단장직 수락 당시 무보수를 조건으로 내걸 만큼 통이 크다는 평가다.

"대학교수들, 정부 출연 연구소 박사들이 SCI(국제논문인용색인) 논문 쓰는 데만 매달리면 누가 창업하고, 일자리를 만듭니까? 지금 우리는 대학이나 연구소 모두 SCI 논문에만 혈안이 돼 있어요. 정작 기업들이 필요한 특허나 기술 사업화엔 관심이 없습니다. 기업 현장이 배제된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박희재(52)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장은 15일 "해외 저널에 논문을 보내면 중요한 데이터를 다 보내라고 하는데 그게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지금처럼 논문으로만 교수, 연구원을 평가하면 수조원 들인 국가 R&D 정보만 해외로 빠져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R&D전략기획단은 산업기술 분야 정책을 발굴하고, 전략을 수립·기획하는 우리나라 산업기술 R&D의 싱크탱크다. R&D 투자 방향과 3조원 규모 예산에 대한 배분안을 제시하고, 대형 R&D 과제를 발굴하는 것도 역할 가운데 하나다. 1기 단장으로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이 2010년 4월부터 올 4월까지 재임했다.

박 단장은 대학과 산업을 넘나드는 국내 최고의 엔지니어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1998년 서울대 벤처 1호인 디스플레이 장비 전문기업 에스엔유프리시젼을 창업했다. 지난 4월부턴 대한민국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불리는 R&D전략기획단장으로,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산업기술 R&D를 이끌고 있다. 박 단장은 "회사 대표를 유지해도 된다고 해서 단장을 맡았다"며 "대신 월급은 한 푼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상황이요? 저처럼 창업을 하는 교수나 연구원이 나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최근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창조경제의 모델이 '독일과 영국을 더한 것'이라고 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 나라들의 산학 협력부터 배워야 해요."

박 단장은 독일 작센주의 예를 먼저 들었다. 동독 지역인 작센주는 통일 이전 1인당 소득이 1만2000달러에 그쳤는데 20년 만에 6만5000달러로 늘었다. 대기업들이 들어온 것도 아니다. 주(州) 정부의 적극적인 산학 협력 지원 정책으로 20개 대학과 14대 연구소가 직원 10여명의 수많은 기술벤처를 낳았기 때문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Fraunhofer) 연구소의 소장이 창업하겠다고 연구소를 나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표면 가공의 권위자인 교수가 있어요. 기업에 정말 중요한 기술인데, 곤충의 표면장력 논문만 쓰고 있어요. 유명 저널에 논문을 내면 편히 살 수 있거든요. 대덕 연구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우리나라 경쟁력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박 단장은 "학위 과정도 산학 협력을 위해 확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2008년부터 40개 대학에서 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면 논문 없이도 석·박사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교수가 기계 하나 주면서 기업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찾으라고 합니다. 기업 현장을 제일로 치는 것이죠. 수시로 기업을 찾아가 애로 사항을 듣고 개발한 기술을 발표하게 합니다. 논문에만 매달리는 학생과 이들 중 누가 더 산업에 도움이 될까요." 박 단장은 "뜻이 맞는 교수님들과 기술 사업화 업적을 논문이나 학위로 인정하는 데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고 정부, 국회와도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라 불리는 초기 사업화 구간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벤처 창업이 많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와 비교하면 지금은 더 상황이 심각하며, 강소기업이 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진단했다.

벤처캐피털 등의 자금을 받는 규모가 되기까지는 2억~3억원이 급한 고비가 몇번 오는데 엔젤투자 등이 움츠러들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뒤를 잇는 벤처기업들의 싹이 말랐다는 것이다. 박 단장은 “우리 회사가 600억원짜리 수주를 했는데 국내 은행에서 200억원 보증을 구하지 못해 낭패를 본 적도 있다”며 “담보가 있어야 돈을 빌려 주겠다는 ‘전당포’식 금융은 벤처 창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수출 규모 1000억~1조원의 세계 1~3위 기업을 따졌더니 독일이 1300개, 미국 300개, 일본 150개인데 우리나라는 25개이더군요.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을 늘리려면 대기업만 바라보지 말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소·중견기업을 키워야 합니다.”

박 단장은 “아들이 강남 8학군 출신인데 반창회를 했더니 40명 중 절반이 대기업 계열사에 있다고 하더라”며 “더 놀라운 것은 3분의 2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곧 회사를 나오겠다고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TV에도 대기업, 공기업 다니는 사람만 나오니 그럴 수밖에요. 독일 강소기업에는 유명 공대를 나와 고향에서 일하며 정년을 보장받는 전문가들이 수두룩합니다. 젊은이들이 다양한 꿈을 펼칠 수 있는 작고 강한 회사를 곳곳에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SCI(Science Citation Index)

미국의 연구 정보 전문업체인 톰슨사이언티픽(Thomson Scientific)이 과학기술 분야 학술잡지에 게재된 논문의 색인을 모아 놓은 데이터베이스. 특정 논문이 얼마나 많이 인용됐는지, 어떤 논문에 인용됐는지 알 수 있다. 연구비 지원, 학술상 심사 등의 자료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