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문 지음ㅣ알투즈ㅣ344쪽ㅣ1만5000원

미국 실리콘밸리의 코트라(KOTRA) 무역관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다. 올 들어 이곳에 유독 한국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정부 기관부터 대학과 기업, 언론에 이르기까지 너도나도 몰려와 문을 두드렸다. 다들 목적이 대동소이했다. 어떡하면 실리콘밸리를 복제할 수 있을까. ‘창조경제’를 앞세운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의 일이다.

실리콘밸리는 한국 사람들에게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걸핏하면 찾아간다. 이 책은 그 '국가적 로망'의 현장에 대한 일종의 전문가 답사기다. 실리콘밸리를 4년 살아본 저자가 한국 창업 문화와 비교해 알기 쉬운 문체로 정리했다. 마치 '갤럭시4' '아이폰5S' 같은 신제품이 나오면 정보기술(IT) 블로거들이 저만의 사용기를 내놓는 것처럼. 저자는 블로그 조성문닷컴(http://sungmooncho.com)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책은 우선 오늘날 정보기술(IT) 키워드를 ‘소프트웨어’로 압축한다. 서부 스탠포드 대학이 동부의 유수 대학을 앞지른 것이나,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코딩(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배우겠다고 자처한 일, 선거 캠페인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을 보좌한 빅 데이터 분석팀을 구글이 통째로 인수한 일 모두가 소프트웨어의 힘이라는 얘기다.

소프트웨어 시대에 똑똑한 사람은 더 없이 창업하기 좋다. 하드웨어 사업과 달리 막대한 자본이 필요 없고 개발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연결사회(hyper connected society)에서는 ‘크라우드 펀딩(대중으로부터 자본 조달)’도 쉽다.

이 책에서 소개한 차량 공유업체 ‘집카’, 온라인 영화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 모바일 게임업체 ‘슈퍼셀’ 같은 곳의 창업 스토리도 한꺼풀 벗겨 내면 소프트웨어 시대의 기업 성공담이다.

전반부에는 실리콘밸리에 대한 정보가 소개된다. 저자 특유의 관점과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은 후반부다. 실리콘밸리의 리더는 과연 무엇인가를 화두 삼아 밀도있게 탐색한다. 답은 ‘카리스마 있고 외향적이며 간간이 사기성도 있는 보스형’이 아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비전을 가진 커뮤니케이터이자 스토리 텔러, 그리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자기 통제와 자기 확신이 강한 리더가 더 많았다.

주변엔 ‘전형적인 리더상’ 때문에 창업조차 포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리더는 어떠해야 한다’라고 단정짓는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런 어리석음은 멀리할 수 있다. 저자가 책 제목을 ‘스핀 잇’이라고 붙인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다. 세상을 ‘돌리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영역에서 세상을 바꿔 보자는 얘기다.

책에는 실리콘밸리에 살아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재미난 일화도 많다. 넷플릭스 유료 회원이 될 것인가, 아마존 유료 회원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목,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부터 애플TV, 구글TV, 로쿠박스를 다 써보고 만족하지 못해 중고를 팔거나 제품을 반납하는 대목,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에서 민박을 구하고 집주인의 와인을 사며 대만족하는 대목이 깨알처럼 씹힌다.

실리콘밸리를 동경하며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눈여겨 볼 조언도 많다. 다만, 평소 실리콘밸리 뉴스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다소 진부한 얘기들도 등장한다. 실리콘밸리가 낯선 사람, 갑작스런 출장을 앞두고 무작정 무역관에서 정보를 얻으려 하기 전에 이 책을 넘겨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