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에 산 벤츠가 강변북로를 달리다 갑자기 시동이 꺼져버렸어요. 공식 수리센터에서도 원인을 못 찾겠다며 엔진을 통째로 갈아 끼우는 데 30일이 걸린다는데, 어떻게 하나요?"(고모씨·경기도 성남)

"몇 년 전 경기도 한 매장에서 도요타 캠리를 샀는데, 그 매장에서 산 차는 부산 서비스센터에서만 수리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집에선 창원 센터가 더 가까운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최모씨·경남 사천)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국에 접수된 수입차 관련 소비자 불만 중 일부다.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수입 자동차 판매량이 연평균 22% 늘어나는 동안, 수입차 소비자들이 소비자원에 신고한 피해 건수는 연평균 41%씩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산차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큰 기대를 안고 샀지만 주행 중 시동 꺼짐 같은 기초적인 고장을 겪어 불만을 호소한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후 서비스(AS)에 대한 불만도 단골 메뉴였다.

시동 꺼짐 등 기초적 고장까지

27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접수된 수입차 관련 소비자 피해 건수는 총 609건. 2008년 56건에서 지난해 187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소비자원이 공식 집계하는 '피해 건수'란, 일반 불만 상담 사례 중 증빙 자료를 갖춰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가 가능한 것을 따로 추린 것이다. 전체 상담 건수는 매년 5만여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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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건의 피해 사례를 유형별로 보면, '품질 미흡'이 65.7%로 가장 많았다. 이 중 엔진 고장(34.5%), 소음(13.3%), 페인트칠 불량(10%) 등이 높은 빈도를 차지했다. 피해구제2국 자동차팀 고광엽 팀장은 "엔진·변속기 고장 같은 기본적이면서도 치명적인 고장을 호소한 경우가 많아 의외였다"고 말했다. 실제 BMW는 지난해 4월 국내에서 배터리 케이블 불량에 따른 화재 위험성 때문에 5시리즈와 6시리즈 등 2만여대를 리콜했다. 배터리 케이블이 차체에 확실히 고정되지 않아 차가 떨리면 배터리 연결부위가 느슨해져 버리는 단순한 결함이었다. 벤츠도 디젤 연료필터 결함으로 기름이 새는 문제 때문에 지난해 5000여대를 리콜하기도 했다.

브랜드별로 이제까지 국내 누적 판매대수 대비 피해구제 접수 건수가 많은 곳을 추려보니, 크라이슬러가 1만대당 14.7대로 가장 많았다. 아우디(13.7대), GM(13.5대), 폴크스바겐(11.7대), 재규어(11.4대) 등이 뒤를 이었다. 조사 대상인 14개 브랜드 중 불만 건수가 가장 적은 곳은 일본 업체인 혼다(2.9대)와 도요타(4.2대)였다.

사이드미러 한쪽 수리에 180만원

수입차 소비자의 불만을 사는 비싼 수리비 실태도 이번 소비자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소비자원이 주요 12개 브랜드가 판매하는 배기량 1.8~2.5L짜리 주요 수입차의 3대 부품 수리비(앞뒤 범퍼, 사이드미러)를 조사한 결과, 사이드미러 한쪽 교체에 180만원이 드는 곳도 있었다. 재규어 XF 2.0이 이 경우였다. 재규어 앞 범퍼(215만원)와 뒤 범퍼(237만원), 사이드미러(한쪽 180만원)를 모두 바꾸면 총 632만원이 들어, 차 값(5990만원)의 10.6%에 달하는 수리비가 나오는 걸로 계산됐다.

인기 차종인 벤츠 E클래스는 범퍼 값이 160만~170만원, 차 값이 3000만원대인 혼다 어코드도 범퍼 수리비가 110만원에 달했다. 수입차 평균 가격대와 가장 근접한 현대차 제네시스의 범퍼 교체비는 60만원 선. 엔진오일 교체 비용도 조사 대상 수입차는 11만원에서 26만원으로 제네시스(4만원) 대비 6배가 넘었다. 이번 조사 대상에서 빠진 배기량 3.0L 이상의 고급 대형 수입차는 범퍼 한 개에 2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팀장은 "최근 수입차들이 할인 판매를 많이 하고 있지만, 실제 유지하는 데는 상당한 돈이 든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리자는 취지에서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국산 대비 수입차의 차 값 격차는 많이 줄었는데도 수리비는 여전히 크게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한국자동차품질연합 김종훈 대표는 "국산의 경우 부품대리점에서 부품만 사서 일반 공업사에서 교체하는 게 가능하지만, 수입차는 지정 센터에서만 수리를 받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며 "수입 부품 공급처가 다양해지고, 수리에도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가격이 훨씬 내려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