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전들이 시험성적서 위조와 고장 등으로 인해 잇따라 가동이 중단되면서 올해 우리나라는 극심한 전력난을 겪었다. 전력수급이 어려움을 겪은 데는 원전의 가동 중단이 주된 이유가 됐지만 원전을 제외하고 전력공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계열의 5개 발전 자회사(남동발전·동서발전·남부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들이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있다. 원전과 함께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뒷받침해야 할 이들 회사들이 불과 1년새 고장이 2배 넘게 늘어나는 등 잦은 고장으로 인해 전력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력업계와 정치권 등에서는 한전의 5개 발전자회사들에 대한 관리감독만 제대로 됐어도 지금과 같은 심각한 전력난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들 발전자회사들이 잦은 고장으로 전력생산에 차질을 빚게 만들면서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으며 모회사인 한전보다 더 많은 급여와 성과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업계의 '도덕 불감증'을 보여주는 셈이다.

◆ 해마다 급증하는 발전자회사 고장절반 이상이 '보수 불량'

최근 5년간 한전 발전자회사 고장 건수 내역.

23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을 포함한 한전 계열 6개 발전사들의 올해 고장 건수는 6월말 기준으로 51건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6월말 기준의 6개 발전사들의 고장 건수인 43건보다 8건 더 늘어난 수치다. 올해 6월말까지 한수원의 고장 건수가 2건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5개 발전사들의 고장 건수는 지난해보다 훨씬 큰 폭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한전 계열 발전자회사들의 고장 건수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 오다가 지난해부터 더욱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발전자회사들의 지난해 고장 건수는 총 98건으로 전년 44건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다.

한수원의 경우 지난해 고장 건수가 총 9건으로 전년 7건에 비해 불과 2건이 늘었난 데 반해 한수원을 제외한 5개 화력발전사들의 고장 건수는 2011년 37건에서 지난해에는 89건으로 약 2.5배 늘었다. 지난해 5개 발전사들의 회사별 평균 고장 건수는 17.8건으로 9건을 기록한 한수원의 약 2배에 이른다.

문제는 고장 건수의 절반 이상이 점검이나 관리 소홀로 빚어졌다는 점이다. 전력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수원을 포함한 한전 발전자회사들의 고장 건수 98건 중 '보수불량'에 의한 고장이 55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년 고장 건수 중 '보수불량'이 31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들어 발전자회사들의 관리가 더 소홀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한전 계열 5개 화력발전사들의 고장 건수는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의 경우 올해 초부터 하동화력발전소를 시작으로 영월천연가스발전소, 부산천연가스발전소 등에서 연이어 고장이 발생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된 건수가 9건에 이른다. 부산복합 7호기의 경우 6월 한 달 동안에만 2건이나 고장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들어 전력난 위험이 커진 와중에서도 잇따라 고장이 발생해 전력대란을 부채질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0일에는 한국동서발전의 일산 열병합발전소 3호기가 고장이 난 데 이어 이튿날인 11일에는 당진 화력발전 3호기에서 고장이 발생했다. 12일에는 한국중부발전의 충남 서천화력발전 2호기가 고장으로 발전이 정지됐다.

◆ 몸집 불리기는 '혈안', 신재생에너지 등 정부 요구 이행은 '뒷전'

한국남동발전 등 일부 한전 계열 발전사들은 자회사를 설립한 후 일감을 몰아주고 퇴직자들을 재취업시킨 것으로 드러나 정치권의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국남동발전 브랜드 이미지.

최근 들어 관리 소홀로 잦은 고장이 발생하고 있지만 일부 발전자회사들은 오히려 자회사를 통한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하고 있다. 자회사를 통해 퇴직한 직원들의 자리를 만들고 고액 연봉까지 지급하기 위해서다.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전순옥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남동발전은 지난 2011년 1월 '한국발전기술'이란 자회사를 설립하고 총 862억원 규모의 발전소 정비계약을 몰아줬다. 남동발전은 또 이 회사에 퇴직자 25명을 재취업시키고 고액 연봉까지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감사를 진행한 후 남동발전 측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한국발전기술은 직원 수가 당시 61명에서 올해 6월말 225명으로 오히려 덩치가 4배 가까이 커졌다.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와 퇴직자 재취업 알선 등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반면 정부가 추진 중인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돈이 되지 않는 사업'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발전회사들은 의무적으로 발전량 중 정해진 양만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신재생에너지공급 의무화 비율(RPS)'을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한수원을 제외한 한전 계열 5개 발전공기업들의 RPS 이행율은 오히려 민간발전사보다 적은 수치에 머물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수원의 RPS 이행율은 80.8%에 이르고 민간 발전사인 GS EPS는 70.3%, GS파워는 71.3%, 포스코에너지는 70%를 각각 기록 중이다. 반면 남동발전은 절반 수준에 불과한 43.7%에 그쳤다. 중부발전(53.1%)과 서부발전(57.6%) 등 다른 발전공기업들 역시 저조한 수준이었다.

◆ 최고 수준 연봉·성과급에 돈잔치까지 예고정치권 "관리 필요" 지적 잇따라

지난해 한전과 계열 발전자회사들의 임직원 급여와 성과급 내역. (단위 : 만원, 출처 :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

최근 이 같은 발전공기업들의 문제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국회 일부 의원들은 발전공기업들이 매년 높은 수준의 급여와 성과급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하며 보다 철저한 경영 관리를 통해 방만한 운영을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재천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전력수급을 담당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연봉이 평균 8000만원대 수준으로 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평균인 2817만원의 3배에 이른다"고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전력공기업 가운데서도 한수원을 제외한 5개 발전사들의 급여와 성과급은 최고 수준이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남동발전 등 5개 발전사 직원들의 평균보수는 7800~7900만원대에 달해 모회사인 한전의 7303만원을 크게 웃돌았다. 남동발전과 동서발전의 경우 임원보수는 약 3억원에 달했다.

이들 발전사들은 올해도 이미 거액의 성과급 잔치가 예정돼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평가에서 남동발전과 남부발전이 'A'등급을 받는 등 대부분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전사들이 전력을 한전에 공급하고 매년 높은 이익을 얻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벌이는 성과급 잔치가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민자발전사들이 매년 전력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돈잔치를 벌인다는 지적이 많지만 한전 계열 발전사들의 급여와 성과급 역시 높은 수준"이라며 "경영과 사업에 대한 보다 철저한 관리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