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필화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학장

해태, 진로, 쌍용, 대우…. 우리 귀에 익은 이 그룹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때 번창했으나 지금은 해체됐거나 주인이 바뀐 곳이란 것이다. 해태는 전자회사 인켈·나우정밀 등을 무리하게 인수해서, 진로는 핵심 역량이 없는 유통·건설업·광고업 등에 진출했다가 몰락했다. 쌍용은 경쟁 우위가 없는 자동차 사업에 손을 댄 결과 추락했고, 대우는 지나친 사업 확장과 과도한 차입에 발목이 잡혔다.

해외로 눈을 돌려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1897년 처음 다우존스 지수를 구성했던 12개 회사 가운데 아직도 존재하는 회사는 단 하나, 제너럴일렉트릭(GE)뿐이다. 포천지가 선정한 1970년도의 세계 100대 기업 가운데 2010년에도 그 대열에 낀 기업은 21개밖에 안된다.

하지만 한편으론 장수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어떤 회사가 오랫동안 살아남는가? 또 어떤 회사가 몰락하거나 다른 회사에 합병당하는가? 그들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몰락하는 기업엔 공통점이 있다"

146년 역사의 독일 기계전문 업체 포이트(Voith)를 이끈 헤르무트 코르만(Kormann) 교수는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똑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리석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업이나 해외 기업 사례를 보면 기업이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큰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는 과욕(過慾)이다. 2003년 독일 히포조합은행에서 분사해 설립된 히포부동산은 2년 뒤인 2005년 독일주가지수(DAX)에 편입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2006년 주가는 57유로, 자본수익률은 11.4%로 고공행진했다. 하지만 급성장에 취했던 게 문제가 됐다. 50억유로를 주고 공공 금융서비스 전문인 데파 은행을 인수하자마자 주가가 추락하기 시작해, 결국 주가 1유로짜리 기업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독일 고급 스포츠카 업체 포르셰도 1997년 25억유로이던 매출이 2007년 89억유로로 늘고, 같은 기간 이익도 8배나 증가했다. 그런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자동차 회사가 되자 욕심을 부렸다. 범(凡) 가족기업이자, 덩치가 16배 큰 폴크스바겐을 인수하려고 지분을 70% 이상까지 끌어모았지만, 막판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2009년 거꾸로 폴크스바겐에 먹히는 신세가 됐다.

기업 전체의 도덕성이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1913년 설립된 미국의 대표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은 2001년 매출액이 93억달러, 직원은 8만5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에너지기업 엔론 회계 감사를 맡으면서 직원들이 자료를 임의로 파기한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과 투명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비록 회사의 한 부서가 실수를 저질렀고 극소수 경영진의 책임이라 해도, 이 문제로 세계적 악명을 떨치면서 회사는 한순간에 종말을 맞고 말았다.

독일의 대표적인 비철금속 제련·판매 관련 대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메탈게젤샤프트는 1993년 원유 선물투자 실패로 13억달러 손실을 내 회사가 공중분해 됐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심멜부슈가 위험한 결정을 한 것이 우량 회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탐욕과 과대망상 버려야 '큰 실수' 피해"

이처럼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큰 실수'는 무조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 위에서 다룬 회사들이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금도 존재하거나 독립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코르만 교수의 말이 맞다. 기업은 미련한 짓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큰 실수의 원인 가운데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과대망상증이다. 경영자, 오너, 이사회 모두 과대망상증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흔히 '퀀텀 점프(대약진)'라는 말은 '큰 실수'와 같은 뜻으로 판명 나는 경우가 많다. "○○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우리는 △△ 분야에서 크게 도약할 것입니다"와 같은 발표를 경계해야 한다. 기업의 비범한 성공이야말로 과대망상증이 가장 자라기 쉬운 이상적인 토양이다.

회사를 큰 실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면 과도한 차입과 무리한 재무관리도 포기해야 한다. 흔히 큰 실수는 겸양·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경영자들이 자주 저지른다. 자질이 부족한 최고경영자의 선발 자체가 큰 실수인 경우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