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한라공조가 최대주주인 미국 자동차 부품회사 비스티온의 전 세계 공조사업 부문 계열사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라공조 주가는 연일 약세를 보였다. 작년 8월 말에 2만4100원이던 한라공조 주가는 11월 초에는 2만원까지 하락했다. 비스티온 공조사업 부문 인수가 한라공조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한라공조 지분을 사들인 투자자문사가 있었다. 밸류앤드스페셜시츄에이션스(V&S)투자자문은 작년 말 한라공조에 투자를 결정했다. 이남호 V&S투자자문 대표는 "비스티온 공조사업 부문 가치가 증권업계의 추정치보다는 높고, 한라공조의 사업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한라공조는 지난 1월 비스티온 공조사업 부문을 인수했고, 주가는 올해 들어 45.6% 올랐다.

◆ 투자할 이벤트를 찾는다

V&S투자자문은 기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에 주목해 투자를 결정하는 이벤트 드리븐(event driven) 전략으로 유명하다. 최근 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들이 롱숏펀드에 몰두하는 동안에도 V&S투자자문은 이벤트에 주목해왔다.

V&S투자자문이 이벤트 드리븐 전략으로 처음 주목받은 건 현대건설(000720)인수전 때였다. 2010년에만 해도 현대건설 인수전은 한치 앞을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대건설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V&S투자자문은 당시 현대건설의 기업가치와 매각 가능성 등을 종합해 현대건설 주식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V&S투자자문은 현대건설 투자로 50%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이후 V&S투자자문을 소개할 때는 항상 이벤트 드리븐 전략의 대가라는 말이 따라 붙고 있다.

이남호 V&S투자자문 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V&S투자자문이 이벤트, 즉 특수한 상황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지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V&S투자자문의 S는 스페셜시츄에이션스(special situations)를 의미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특수상황 정도가 된다. 주식을 살만한 특수상황이란 게 뭘까. 이 대표는 "인수합병(M&A), 회사분할(spinoff), 사업구조조정(restructuring), 도산, 소송 같이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벤트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특수상황이 한라공조의 비스티온 공조사업 부문 인수였다. 최대주주 기업의 글로벌 사업부문을 인수하는 것은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반면 사업부문을 인수했을 때 생기는 시너지도 적지 않다. V&S투자자문은 시너지가 크다는 쪽에 베팅했고, 결국 성과를 냈다.

파라다이스(034230)도 V&S투자자문이 특수상황에 주목한 투자로 쏠쏠한 수익을 낸 기업이다. V&S투자자문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에 걸쳐 파라다이스 주식을 사들였다. 당시 파라다이스 주가는 3000~1만원 정도. 현재 파라다이스 주가는 2만원을 넘었다. 이 대표는 "처음 파라다이스에 투자할 때는 보유한 자산에 주목했지만, 이후 자회사를 합병하면서 기업 가치가 좋아졌다"며 "지금은 주가가 많이 올라서 신규 매수는 하지 않고 있지만, 자회사 합병이 계속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이전에 샀던 주식은 계속 보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벤트 드리븐 전략은 이야기만 들으면 쉬워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기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벤트는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의사결정과 거시 경제 환경, 산업 특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분석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벤트 드리븐 전략은 헤지펀드들이 주로 사용하는 위험요인이 큰 투자방법으로 꼽힌다. 그런데 V&S투자자문 운용고의 70% 정도는 기관투자자가 맡긴 자금이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위험한 투자전략인 이벤트 드리븐을 쓰는 V&S투자자문에 돈을 맡긴 이유는 뭘까.

◆ 투자 종목만 80개…분산 투자로 위험 줄인다

V&S투자자문 사무실은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한가운데 있다. 전 세계 명품 브랜드 매장들이 한껏 화려함을 자랑하는 청담동이지만, V&S투자자문 사무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수백여개의 서류뭉치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서류뭉치 하나하나에는 상장사들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모두 V&S투자자문 애널리스트들이 직접 방문해 투자를 고민한 기업들이었다.

얼핏 세어봐도 수백개는 될법했다. 이렇게 많은 기업을 분석하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 투자자문사는 많아야 20~30개 정도의 기업에만 투자한다. 과거 '차(자동차)ㆍ화(화학)ㆍ정(정유)'이 잘 나갈때는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소수 종목에만 투자한다는 뜻의 '7공주' 같은 말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남호 V&S투자자문 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V&S투자자문은 정반대의 전략을 짰다. V&S투자자문이 투자하는 종목은 80개에 이른다. 거의 펀드 운용사에 맞먹는 규모다. 이 대표는 "위험요인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전략을 지키기 위해 차화정이 잘 나가던 2010년에도 차화정에는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이런 분산투자 전략이 몇 차례의 폭락장에서도 V&S투자자문을 지켜줬다. V&S투자자문의 대표펀드인 'V&S1호'는 리먼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10월에 설정됐다. 펀드를 만들자마자 폭탄이 터진 셈이지만, V&S1호 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123.2%에 이른다. 한국 증시가 출렁거린 올해에도 8%가 넘는 수익을 내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4% 이상 하락한 가운데 거둔 성과다.

이 대표는 "자산가치, 수익가치, 현금흐름, 배당수익률 같은 기본적인 지표들과 경기 사이클을 종합적으로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며 "V&S의 위험조정수익률은 투자자문사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위험조정수익률은 위험요인을 감안한 수익률로 위험조정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하게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는 의미다. V&S투자자문 운용고는 작년 상반기에 9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3200억원으로 1년 사이 2000억원 이상 늘었다. 이 대표는 "각종 대외변수로 한국 증시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기관투자자들이 좀 더 안전한 투자처를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 저평가된 기업 더 오른다

이 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실적이나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형주 위주로 오르던 장세가 끝나고,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수준)이 낮은 기업들이 오르는 장세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장세가 앞으로 1~2년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표는 "대형주 위주로 오르던 장세가 작년 6월을 기점으로 바뀌었다"며 "한번 바뀐 흐름이 바로 바뀌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흐름이 최소한 1~2년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의 투자 포인트로 경기 회복과 밸류에이션 낮은 기업을 꼽았다. 이 대표는 "우리는 앞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실적이나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기업 중에 경기가 살아나면 수혜가 있을 업종 위주로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동차 부품업체, 중소 철강업체들을 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