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지지부진한 한국 증시에서 10대 그룹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주가가 연초 이후 15% 이상 하락하면서 그룹 전체 시가총액이 36조원 정도 사라졌다. 높은 삼성전자 의존도가 그룹 전체의 발목을 붙잡았다. 반면 SK그룹은 대표적 내수주인 SK텔레콤의 선전에 힘입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그룹 전체 시가총액이 증가했다.

◇삼성그룹 시가총액 36조원 사라져

주식시장에서만 보면,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삼성그룹이다. 증권 정보 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작년 말 338조295억원에서 13일에는 302조6614억원까지 감소했다. 불과 8개월여 만에 시가총액 36조원 정도가 사라진 것이다.

삼성그룹 상장사 중에서도 대형 수출주가 부진했다. 삼성전자는 이 기간 시가총액이 243조6436억원에서 209조4017억원으로 감소했다. 삼성그룹 시가총액 감소분의 대부분이 삼성전자에서 나온 셈이다.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전기도 이 기간 시가총액이 7조4914억원에서 6조2007억원으로 감소했다.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스마트폰 사업 전망이 좋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삼성전자와 부품 공급 업체가 동반 타격을 받았다.

건설주도 삼성그룹을 괴롭혔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시가총액이 6조6200억원에서 3조428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해외 건설 사업의 저가 수주 문제가 부각되면서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도 시가총액이 9조8652억원에서 8조5303억원으로 감소했다.

◇수출주 울고, 내수주 웃고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도 대형 수출주가 부진한 경우가 많았다. 대신 다른 그룹은 수출주의 부진을 내수주가 만회하면서 그룹 전체 시가총액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LG그룹에서는 LG화학LG디스플레이 시가총액이 연초 이후 각각 2조4000억원, 1조원 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LG그룹 전체 시가총액은 9000억원 정도 감소하는 데 그쳤는데, LG유플러스의 약진이 큰 도움이 됐다. LG유플러스는 올해 들어 시가총액이 3조4055억원에서 5조8069억원으로 급증했다. 대형 수출주가 흔들리는 가운데 통신주가 안정적 내수주로 주목받으면서 주가가 꾸준히 오른 덕분이다. LG유플러스는 연초 이후 주가가 70.5% 상승했다.

롯데그룹에서도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케미칼 시가총액이 1조4000억원 정도 감소했지만, 롯데쇼핑롯데하이마트 같은 유통주의 선전으로 그룹 전체 시가총액은 1조원 정도 줄어드는 데 그쳤다.

수출주의 부진을 만회해줄 내수주가 없는 그룹은 시가총액이 크게 감소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진그룹이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한진해운 등 운송 산업에 특화돼 있는데, 올해 항공 산업과 해운 산업이 모두 불황을 겪으면서 그룹 시가총액이 5조3426억원에서 3조6494억원으로 감소했다.

◇SK그룹만 웃었다

10대 그룹 가운데 올해 들어 시가총액이 늘어난 그룹은 SK그룹이 유일하다. SK그룹은 작년 말에 시가총액이 68조5042억원에서 13일에는 70조8373억원으로 증가했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SKC·SK케미칼·SK가스 같은 화학·에너지 업종 상장사가 부진했지만, SK텔레콤·SK하이닉스·SK브로드밴드 등이 골고루 선전하면서 그룹 전체 시가총액은 오히려 늘어났다. 특히 SK텔레콤은 시가총액이 4조5000억원 정도 증가하면서 SK이노베이션을 누르고 그룹 내에서 시가총액 2위 자리를 꿰찼다. SK그룹 시가총액 1위 상장사는 올해 2분기에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 실적을 낸 SK하이닉스가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