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D 홀든|이경식 옮김|책읽는수요일|380쪽|1만5000원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때 일이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연단에 섰다. 지지자 중 한 여성이 나서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걱정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더니 불쑥 이렇게 내뱉었다. "내가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그 사람(오바마)은 아랍인이라구요." 매케인은 곧바로 그의 말을 반박했다. "그게 아닙니다. 오바마는 훌륭한 가문 출신이고, 훌륭한 시민입니다. 나는 당신 말에 동의할 수 없네요."

순간 유세장은 싸늘해졌다. 군중은 실망한 듯 웅성거렸다. 매케인은 결국 대선에서 패했다. 매케인은 거짓된 정보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신뢰를 저버리는 실수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상품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박'을 터뜨리고, 어떤 브랜드는 승승장구하다가도 한순간에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허술한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자격 미달 후보가 당선되기도 한다. 모두가 오늘날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한 유령, '팬덤(fandom)' 때문이다.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최고전략책임자이면서 브랜드 전략 전문가인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오늘날 대중이 무한 정보 시대를 살아가면서 본능적으로, 또는 편의를 위해 정보를 삭제하고 편집해 구미에 맞게 정보들을 '재창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조자들과 결속해 자신의 의사결정이 틀릴지도 모르는 데 대한 불안을 해소한다. 팬덤의 형성 과정이다.

저자는 이런 비논리적 비약으로 만들어진 믿음을 '사회적 계약'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계약 관계는 집단의 감정 상태가 고조됐을 때 형성된다. 어떤 인물과 상품에 대한 열정이 비논리적 비약을 만들어낸다. 영화 '아이언맨'으로 인기를 끈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사회적 계약의 수혜를 본 인물 중 하나다. 아버지로부터 마약을 배운 다우니는 마약 복용으로 여러 차례 체포됐다. 재활 치료를 반복하고 자주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대중은 다우니를 계속해서 받아들였고, 그의 재기는 매번 성공으로 이어졌다. 대중이 그와 맺은 너그러운 사회 계약은 "그 높은 창의적인 재능에는 때로 정서적인 불안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팬덤의 예시다.

저자는 이런 신봉자들을 공략하면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비논리적인 시장을 원망하기보단 뼛속까지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 때문에 성공적인 기업들은 저마다 팬덤을 이해하고, 그들이 따르는 가치관을 실현해줄 수 있는 '최고감정책임자(chief emotion office)'가 있다고 말한다. 가령 애플에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애플의 신봉자들은 췌장암으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 전 최고경영자에게 죄의식을 느낀다. 잡스가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고자 노력하다 결국 수명을 단축시켰고,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리더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잡스의 뒤를 이어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은 지난해 4분기 최고의 실적을 냈음에도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의 비논리적인 감정이 어떻게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지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책이다. 세계의 역사, 정치 그리고 기업 사례들로부터 뽑아낸 일화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