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 건축가

서울 강남 교보타워사거리의 명물 ‘어반하이브(urban hive)’ 빌딩. 이 건물의 설계자인 김인철(66) 건축가는 얼굴이 새카맣게 타 있었다. 서울 성동구 용답동의 건축설계사무소 ‘아르키움’에서 만난 한국의 건축 거장은 최근 ‘세계의 지붕’으로 일컫는 히말라야 서북측 무스탕(Mustang) 지역의 작은 마을 좀솜(Jomsom)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곳의 라디오 방송국 ‘바람 품은 돌집’의 설계를 맡은 김인철은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20인승 경비행기로 해발 3000m 고원 지대를 수시로 오가며 풍토(風土)를 읽고, 건물 시공과정을 꼼꼼히 살폈다.

한국의 건축 명장으로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설계 의뢰가 밀려드는 김인철에게 뭐하러 생고생을 자처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유한 지역의 풍토에 기반한 새로운 건축을 하는 것만큼 재밌는 것은 없다”고 답했다.

바람 품은 돌집의 공사 당시 전경

설계비도 없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김인철은 이 지역의 주요 건축 재료인 돌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바람 때문에 어둡고 폐쇄적이었던 네팔 전통 건축의 분위기를 뒤집었다. 제주 돌담을 연상시키는 담을 통해 바람을 눅이고, 건물 몸체에는 전면 창을 둬 천혜의 자연경관과 사람들과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었다.

김인철은 현재 유걸, 조성룡, 승효상과 더불어 현재까지 손을 놓지 않은 몇 안 되는 건축 원로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홍익대 건축과, 국민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14년간 건축가 엄덕문 문하에서 실무를 거쳐 1986년부터 현재까지 100개가 넘는 건물을 설계해왔다.

김인철의 건축 화두는 ‘한국 전통 건축에 바탕을 둔 공간 해석’이다. 그는 십수 년째 전통 건축물을 답사하고, 평·단면을 들여다보면서 현재의 한국적 건축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전통 건축이 드러내는 형태, 형식, 설계·시공의 ‘재생산’이 아니라 범람하듯 무차별적으로 들어와 앉은 서양 건축을 탈피해 본연의 풍토에 맞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바람 품은 돌집의 벽면 전경

“우리 전통건축은 벽과 지붕을 통해 공간을 만드는 서양식 건축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기둥을 통해 틀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 여러 공간을 만들어 냈다. 기둥에 바로 벽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 툇마루를 만들고 거기에 종잇장같이 얇은 벽을 댔다. 이 벽은 집의 하중을 견디는, 구조를 담당하는 벽이 아니기 때문에 서양의 ‘벽’의 개념과 다르다. 공간 구획의 역할로 굳이 말하면 ‘투명하고, 가벼운 벽’이다. 견고하게 닫힌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서양건축이라면, 우리의 건축은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 전통 건축의 정체성이다.”

김인철의 최근 건축은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운다’는 개념을 토대로 진행되고 있다. 2008년 준공된 어반하이브는 건물의 구조를 밖으로 빼고, 그 틀 안쪽에 유리벽을 넣어 공간을 구성했다. 건물의 구조를 담당하는 콘크리트에 일정한 간격의 구멍을 내고, 내부의 공간을 구획하는 벽은 투명한 유리로 마감하면서 ‘특별한 방식’의 소통 구조를 만들어 낸 것.

건축평론가 이주연은 “김인철의 건축은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주변을 지나는 이들에게도 대화하려는 듯한 표정으로 집 안팎이 편하게 소통하며 열려 있다”며 “이런 건축이야말로 우리네 세상과 함께하는 공공성인 셈”이라고 평했다. 지난해 김인철의 준공작 ‘질모서리’ 빌딩이나 최근 공사를 마친 ‘프레임’ 빌딩 역시 어반하이브에 적용된 전통건축 해석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어반하이브가 교보타워와 자웅을 겨루듯 랜드마크로 부상하면서 김인철에겐 두 명의 땅주인이 찾아왔다. 교보타워 사거리에 고층빌딩이 들어서지 않은 서북측 코너의 땅주인과 동남측 코너의 땅주인이었다. 모두 어반하이브 같은 획기적인 빌딩 설계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김인철의 건축설계사무소를 한번 둘러보더니 ‘이게 다냐’는 질문과 함께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한국은 건물을 지을 때 건축가가 아닌 건설사부터 찾는다. 건설사에서 설계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제야 건축설계사무소를 찾거나, 건설사가 소개해주는 곳으로 간다. 교보타워사거리의 두 땅주인은 나를 포함해 10명도 안 되는 사무실을 보더니 발길을 돌렸다. 수백명이 앉아 있고, 회사다운 면모를 갖춘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몇몇 개인만 건축에 무지한 것이 아니다. 정부부터 건축의 중요성을 모르고 홀대해 왔다. 그 결과가 우리 도시의 표정이다. 일관성 없고, 다양성 없는 우리 주변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김인철은 최근 ‘바람 품은 돌집’ 작업을 하면서 연을 맺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최근 사업 현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코이카는 국제 원조가 필요한 국가에 학교나 병원, IT센터 등을 지어주는 사업을 최근까지 4600억원 규모, 프로젝트 120개에 달할 정도로 진행했는데, 해당 사업이 국내 건축계엔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이카는 각 프로젝트를 입찰 방식으로 발주해 왔다.

“국내 건축가들이 작은 공공건축물 설계 하나를 따내기 위해 박터지게 경쟁할 때, 국가에서 해외에 지어주는 건축물은 건설사를 통해 단순하게 설계돼 온 것이다. 젊은 건축가들 일이 없어 난리인데, 120개의 프로젝트가 별 고민 없이 건설사에 의해 설계되고 준공된 것이 애석하다.”

김인철은 이 사실을 알고 직접 코이카에 찾아가 특강을 하겠다고 했다. 설계권 안 줘도 되니 국내 건축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최근에서야 코이카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입찰이 아닌 공개 현상공모 방식으로 발주했다. 그는 “관(官)과 기업부터 건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며 “그래야 국내에서도 건축 문화가 꽃피고, 우리네 주변이 건축가들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꽃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철은 현재 ‘바람 품은 돌집’ 이후 설계를 맡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복합문화시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한국 건축가에게 맡겼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라도 완벽을 기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