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대 서울대 교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이 말은 1990년대 ‘세계 경영’을 주창하며 승승장구했던 김우중 대우 회장이 내건 구호로 유명하다.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자는 이 말은 그 뒤 우리의 국가 전략 같은 것이 됐다. 수출 시장 개척으로 산업화를 달성한 데 이어, IMF 사태라는 초유의 국제적 파고를 맞아서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산업 구조를 바꿨다. 그 과정에서 국가 경제의 중심은 노동집약 산업에서 기술집약 산업으로 이동했다. 2013년 현재 반도체, 핸드폰, 조선, 자동차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국가들 사이의 기술 격차가 줄어들면서 국내 산업은 다시 난관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과 중국 등 후발국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다. 이제는 “세상은 좁고 경쟁은 심하다”는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오늘날 기업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과거에 비해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4년 국내 개봉되어 크게 인기 끈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는 2029년이면 로봇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설정으로 돼 있다. 그땐 그럴 것도 같았다. 하지만 2013년 현재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지금부터 16년 후 로봇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설정을 실현 가능하다고 믿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실 지금 기술력으로 보면 2029년에 사람 비슷한 로봇이 개발될지조차도 미지수다.

◆ 기술 발전 속도 느려지면서 정보 중요성 부각

이런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에 대한 체감 온도차는 과거 30년 동안 실제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가 크게 느려졌음을 뜻한다. 1965년 무어의 법칙 (Moore's law), 즉 반도체 메모리 집적량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비용 문제 때문에 그 유용성이 의심받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느려지면 후발주자가 선발주자와의 격차를 쉽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치열해지는 경쟁 상황에서 나날이 중요성을 더해가는 것이 바로 정보이고 그 집적체인 빅데이터다. 왜 그런가.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일반적으로 새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하고 제품을 개발, 판매한 후에는 만족도 조사가 이어진다. 이런 방법의 문제점은 두 번의 조사 사이의 시간 차이가 커서 판매 초기에 생기는 문제에 대한 선제적 조치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대변되는 소셜네트워크에서 생성되는 실시간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소셜네트워크에서 언급되는 자사 제품의 평가(VOC·Voice Of Customer) 등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보다 선제적으로 소비자 불만에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 시장을 위한 소셜네트워크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활용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폭발 같은 브랜드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소비자의 불만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소비자의 불만이 리콜 사태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애쓴다.

◆ 아마존, 빅데이터 활용의 선구자

외국에서는 개별 소비자의 기호를 재빨리 판단해 이를 바탕으로 최적의 마케팅 기법을 디자인하는 활동이 많은 회사에서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유력 신문 워싱턴포스트의 새 주인이 돼 화제를 낳은 제프 베조스가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로 있는 아마존이 그 방면의 선구자다.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인 아마존은 개별 고객의 과거 구매 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 주는 시스템을 도입해 큰 성과를 보고 있다.

일본에는 고마츠라는 회사가 있다. 미국의 캐터필러를 추격하는 세계 2위의 건설기계 제조회사다. 이 회사는 GPS와 센서 데이터를 이용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현재 이 회사의 매출 8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온다. 고마츠는 판매하는 건설 기계에 GPS와 각종 센서를 장착해 기계의 현재 위치, 가동 시간, 가동 상황, 연로 잔량 등의 데이터를 위성이나 휴대전화 등으로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한다. 이런 빅데이터를 효율적인 배차, 도난 방지, 유지 비용 절감 등에 적용해 큰 성과를 얻었다.

국내의 시스템 에어콘도 그와 비슷한 응용 사례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모든 시스템 에어콘의 사용 정보를 실시간 집계 분석해 에어콘 고장을 선제적으로 탐지하고 방지하는 식이다. 이 모든 예들은 빅데이터와 제조업이 만날 경우 얼마나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고, 이를 통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빅데이터 분석의 또 다른 장점은 모집단 전체에 대한 정보를 통해 특정 소비자 그룹(가령 매니아층)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추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소비자 선호도 조사는 표본에 의존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소비자 경향은 파악할 수 있지만, 특정 소비자층에 대한 정보는 쉽게 알기가 어렵다.

◆ 의류업체 자라, 빅데이터로 트렌드 따라잡아

이런 빅데이터의 장점을 이용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한 회사가 요즘 국내에서도 인기를 끄는 의류회사인 자라(Zara)다. SPA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자라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소량 생산해 저렴한 값으로 팔아 다양한 고객층의 기호를 만족시킨다. 단 기간에 의류업계 강자로 떠오른 비결이 다양한 종류의 고객 기호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자사 판매 자료를 분석해 고개별 지역별 패션 트랜드를 정확히 파악하고 최적의 상품을 빠르게 디자인·생산·판매했다. 현재 자라는 1만100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지난 5년 동안 15%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빅데이터의 또 다른 강점은 이종(異種) 데이터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소매업의 경우 날씨 자료와 기업의 판매 자료를 결합해 새로운 정보를 추출해 내고 있다. 편의점 CU는 날씨 정보와 제품별 판매량, 재고량 등을 분석하여 각 편의점에 그날의 최적의 주문량을 제공한다. 결과는 놀랍다. 재고 일수가 15일에서 7일로 줄었고 매출량은 30%가 늘었다. 삼각김밥 같은 음식의 폐기량도 40%나 줄였다.

◆ 식품업체들 날씨 지수로 판매 예측

파리바게트와 던킨도너츠 등의 브랜드를 가진 식품 전문 업체 SPC는 2012년 식품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날씨 판매지수'를 만들었다. 최근 5년간 전국 169개 지점의 기상 관측 자료와 10억 건 이상의 점포별 상품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를 실시간으로 전국 3,100여 파리바게트 점포 단말기에 제공한다. 예전에는 감으로 알았던 것을 이제는 구체적인 데이터로 판매를 예측해 주문에 대처한다. 이런 날씨 지수를 도입한 지 한달 만에 조리 빵 매출이 30% 늘었다.

이처럼 빅데이터의 응용 영역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 그만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산업의 경쟁력 향상이 21세기의 새로운 경제 돌파구를 찾는 데도 열쇠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국내 빅데이터 분석 수준은 아직 초보 단계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지대한 관심과 투자가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빅데이터를 결합하고 분석해 새로운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데이터의 자유로운 거래를 활성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나아가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중소기업들에게도 빅데이터 혁명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