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나 산업용 소프트웨어(SW) 개발 대신 게임 분야에 인력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SW 생태계의 근본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낮은 처우와 '갑(甲)의 횡포'로 대변되는 불합리한 계약, 불법 복제가 횡행하는 사회 분위기 등이 졸업생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신영길 교수(학부장)는 "국내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창업하면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 M&A(인수·합병) 대신 그 아이디어를 금방 훔쳐간다"면서 "건강한 SW 생태계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학생들에게 창업만 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게임 업계엔 '성공 신화'가 있다. 세계 최초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로 대박을 터뜨려 2조원의 자산가가 된 김정주 넥슨 창업자나 대작 게임 '리니지'로 기업을 일으킨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자 같은 인물이 있다. 스마트폰 게임 드래곤플라이트, 애니팡도 하루에 매출을 수십억원 올리며 모바일 게임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지난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를 졸업하고 중견 게임 업체 '게임하이'에 취업한 정민호(27)씨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대기업보다 연봉은 적지만 만족한다"고 말했다. 정씨의 대학 동기생 중에 취업을 선택한 20명 중 4명이 컴투스·EA·애니파크 등 게임사에 입사했다.

◇게임 외 분야는 SW 인력 수급 비상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게임 관련 산업만 기형적으로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2008년 4만3000여명이었던 국내 게임 업체 종사자는 3년 만에 5만2000여명으로 1만명가량 늘었다. 지난해 국내 438개 게임 업체를 대상으로 인력 채용 시 애로 사항을 조사한 결과 72.5%는 '어려움이 없다'고 답했다.

게임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SW 인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소프트웨어 인력의 수요와 공급 '미스매치(불일치)'는 양(量)과 질(質) 모두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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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전문 기업 소프트포럼의 이경봉 대표는 "해킹을 적절하게 막으려면 공격과 방어 비율이 1대10은 돼야 하는데, 현 상황은 심각한 수급 불균형 상태"라면서 "공부 잘하는 학생은 다 의대로 가고 보안 분야는 기피해서 요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질적으로 보면 기업들은 고급(아키텍트)·중급(SW엔지니어) 수준의 SW 인력을 주로 원한다. 수퍼컴퓨팅 전문 기업 클루닉스의 권대석 대표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대부분 현업에서 쓸 수 없는 함량 미달 상태가 대부분"이라면서 "작년에 5명을 뽑으려고 1년 내내 원서를 받았지만 능력을 갖춘 사람이 없어 2명밖에 뽑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장에 주로 배출되는 인력은 초급 프로그래머나 테스터(tester) 수준이다. 정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기업에서 정작 필요한 중·고급 인력은 지난해에만 9350명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래창조과학부 측은 "고급 인력은 SW 분야 종사를 기피하고, SW 관련 학과도 점차 정원을 줄여 전문 인력이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정원은 1999년 90명에서 이듬해 78명, 현재는 55명으로 줄었다. 반면 게임 교육기관은 늘어나고 있다. 2009년 60곳이었던 게임 관련 특성화고·전문대·대학교·대학원 등 정규 교육기관은 지난해 75곳으로 3년 만에 25% 늘어났다.

그 결과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SW·게임SW·인터넷SW·IT 서비스)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4개는 엔씨소프트·위메이드·액토즈소프트·게임빌 등 게임 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도 포털 업체(NHN·다음커뮤니케이션)와 SI 회사(SK C&C·다우기술)가 차지했다. 온라인 결제 대행사인 'KG이니시스'와 토종 보안 업체 '안랩'이 순위권에 들었다.

◇제2, 제3의 게임 산업을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한 분야로만 인력이 쏠리는 것은 국가적으로 상당히 나쁜 영향을 준다고 우려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SW 생태계 복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이진규 인재기획팀장은 "SW 회사가 시장으로부터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것이 임금 현실화와 양질의 인력 확보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도과학기술협력센터 정해룡 소장은 "SW 산업에서 '졸부(猝富)'가 탄생하는 일이 있으면 억지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아도 좋은 인재들이 알아서 뛰어든다"면서 "10년 내에 다양한 SW 산업 분야에서 게임과 같은 성공 신화 2~3개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