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주(州)에 있는 도시 벵갈루루(Bengaluru).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삼성전자 소프트웨어(SW) 연구소 단지 내 공터엔 네 번째 연구동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12층짜리 연구소 건물에 들어서자 층마다 공대 출신 연구원들이 칸막이 친 책상에 빼곡히 앉아 컴퓨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알록나스 데(De) CTO(최고기술책임자)는 "현재 3개 동에 SW 개발 인력 4500명이 있고 연말이면 5000명까지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곳만이 아니다. 델리에도 삼성전자 연구소가 두 곳 있고 각각 2800여명, 1700여명이 일한다. 삼성의 소프트웨어 일자리 9000여개가 인도로 가 있는 것이다.

삼성이 머나먼 이국 땅에 핵심 소프트웨어 단지를 세운 건 '생존' 차원의 절박함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제조에서는 세계 최강자 반열에 올랐지만 하드웨어를 지배하는 SW에서는 세계 일류와 거리가 멀다.

문제는 갈수록 하드웨어의 파워는 약해지고 소프트웨어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휴대폰·자동차·조선·항공·의료기기·통신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핵심 역할을 이젠 SW가 하고 있다.

전 산업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혁명'이 진행 중인데도 한국에선 '혁명 전사(戰士)'가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수년간 삼성·현대차·LG 등 주요 대기업이 해외에서 구한 인력만 최소 2만여명이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전체 SW 인력은 3만6000명. 그중 절반에 가까운 1만6000명은 인도·우크라이나·에티오피아·캄보디아 등 61개국 외국인으로 채웠다. 재작년엔 1인당 국민소득 690달러에 불과한 방글라데시 다카까지 가서 연구소를 세웠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한국에선 아무리 끌어모아도 도저히 해결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삼성뿐 아니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최근 "2017년까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력을 3000명까지 늘려라"고 지시했다. 2020년까지 자동차 기능 차별화의 90%는 전기·전자이며, 이 중 80%는 소프트웨어에서 결판이 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다.

삼성경제연구소는 "SW 산업의 폭발적 성장세를 감안하면 향후 5년간 전체 SW 인력 50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적으로 준(準)비상사태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