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라면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올해 라면 생산 50주년을 맞은 국내 최고(最古)의 라면 업체인 삼양식품이 3위로 밀렸다. 또 하얀 국물 라면의 열풍이 꺾이면서 기세 셌던 4위 팔도의 상승세도 꺾였다. 오뚜기는 라면 사업 26년 만에 처음으로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농심은 시장점유율을 다시 70%대로 끌어올리려 할 정도로 아성을 굳히고 있다.

23일 시장 조사 업체인 AC닐슨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올 상반기 라면 시장에서 11%의 점유율에 그쳐 오뚜기(13.2%)에 2위 자리를 내줬다. 1985년 1위 자리를 농심에 내준 지 28년 만에 3위로 다시 내려앉은 것이다. 오뚜기는 1987년 라면 시장에 뛰어든 이후 처음으로 2위로 올라섰다. 농심은 67.7%의 점유율을 기록, 28년째 1위 자리를 지켰다. 4위는 한국야쿠르트 모회사인 팔도로 8.1%에 그쳤다.

라면 원조 삼양식품, 3위로 하락

삼양식품은 반(半)세기 전인 1963년 9월 15일 국내 최초 라면 '삼양라면'을 생산했다. 회사 역사가 한국 라면 역사다.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장 1위 자리를 지키다 1985년 농심에 밀려 2위로 처졌다. 지난해에는 하얀 국물 라면 인기 속에 내놓은 '나가사키짬뽕'이 매출 호조를 보이며 시장점유율이 13.9%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5년 이상 12%에서 변하지 않던 점유율이 반짝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하얀 국물 라면 인기가 시들해지자 점유율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떨어졌다. 나가사키짬뽕의 후속 라면인 '꽃게짬뽕'과 '홍짬뽕', '돈라면' 등이 모두 소비자의 입맛을 잡지 못했다. AC닐슨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많이 팔린 라면 상위 10위' 중 삼양식품 라면은 삼양라면(5위) 1개뿐이었다. 작년 상반기에는 나가사키짬뽕(5위)과 삼양라면(6위) 2개였다. 대형 마트 관계자는 "삼양식품은 제대로 된 신제품 출시를 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말했다.

"오너에 몰아준다" 비난 무릅쓴 보람도 못찾은 팔도

하얀 국물 라면으로 낭패를 본 것은 삼양식품뿐 아니다. 팔도는 '꼬꼬면' 인기가 식으면서 시장점유율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팔도는 라면 시장점유율 10%(연 점유율 기준)를 달성한 적이 거의 없었으나 2011년, 2012년에는 꼬꼬면 덕분에 9%를 넘었다. 2013년에는 10% 돌파 가능성에 기대를 가졌으나 올 상반기 오히려 8%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팔도가 한국야쿠르트 창립자인 윤덕병(86) 회장의 아들 윤호중(43) 전무가 주식 100%를 가진 개인 회사라는 점이다. 팔도는 원래 한국야쿠르트 관계사를 통해 대부분의 매출을 일으켰던 식품 용기 제조 회사인 삼영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꼬꼬면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뒤인 2011년 12월 한국야쿠르트의 라면 사업 부문을 받아 라면 회사인 팔도로 바뀌었다. 당시 업계에선 "오너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인기 상품의 제조를 몰아준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비난까지 감수하게 만들었던 꼬꼬면의 인기가 떨어졌으니 팔도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 됐다.

제품 개발과 판촉으로 승부해야

오뚜기는 "2위 자리 수성(守城)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입장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라면 시장 격변기에 내놓은 제품이 성공을 거두고 판촉 활동도 공격적으로 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오뚜기는 지난해 7월 컵라면으로만 나오던 '참깨라면'을 봉지면으로도 냈는데 반응이 좋았다. 기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월 참깨라면은 이미 작년 같은 기간의 두 배가 팔렸다. 최근 상품을 개선해서 새로 내놓은 '진라면'과 '열라면'도 판매가 늘었다.

농심이 작년 65.4%까지 떨어졌던 점유율을 올 상반기 67.7%까지 끌어올린 배경에는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잘 팔린 덕이 컸다. 두 라면을 섞어 먹는 유행이 생긴 것이다. 농심 최성호 상무는 "최근 라면 두 종류를 섞어 먹거나 라면과 다른 가공식품을 섞어 먹는 것이 상반기 내내 유행했다"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특정 라면보다는 어떻게 섞어 먹는 방법이 유행하느냐가 라면 매출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