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는 지난 15일 우리금융지주 산하의 경남은행 등 지방은행에 대한 매각 공고를 하면서 미국계 JP모건과 대우증권, 삼성증권을 매각 주관사로 선정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내사들은 대형 M&A(인수·합병) 거래를 주관해본 적이 없어 전적으로 맡기기엔 불안한 측면이 많다"며 "경험 축적을 위해 모든 정부 주관 거래에 국내 회사를 끼워주지만, 외국계가 거의 모든 과정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남은행 인수전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는 DGB금융(대구은행)은 금융자문사로 골드만삭스를 유력하게 고려하고 있고, 경쟁자인 BS금융(부산은행)도 크레디트스위스 등 외국계 자문사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거래를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입장에선 경험이 많고, 네트워크도 풍부한 외국계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M&A 시장을 외국계 금융회사가 독식하는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15년이 흘렀지만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21일 본지가 우리투자증권에 의뢰해 조사한 바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10대 M&A 거래 가운데 국내 증권사가 단독으로 매각 주관이나 매수 자문을 한 경우는 단 1건이었다. 그것도 작년에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하나금융의 계열사인 하나대투증권이 단독으로 매수 자문한 게 유일하다.

작년에 있었던 롯데의 하이마트 인수의 경우 유진그룹이 팔고 롯데그룹이 사는 건이었는데 매각 자문은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매수 자문은 골드만삭스로 양측 모두 외국계 회사였다. 2010년 롯데그룹이 GS마트·백화점을 인수할 때도 양측의 자문사는 BOA메릴린치와 바클레이스로 외국계가 전담해서 M&A를 진행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한국 증권사들이 10대 M&A 자문에 일부 참가하기도 했지만, 외국계가 취약한 국내 규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자문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10대 M&A를 보면 10건 중 9건은 외국계가 주도한 것으로 파악됐고, 이런 추세는 같은 기간 5억달러 이상 M&A를 조사한 내용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씨티·리먼브러더스 등 외국계와 산은·우리금융 등 국내 금융회사를 두루 경험한 민유성 티스톤 회장(전 산업은행장)은 "국내 금융사들은 좁은 한국 시장만 두고 경쟁하다 보니 이미 글로벌화된 국내 기업의 M&A 거래에서 기업의 눈높이를 맞출 정도의 노하우를 축적하지 못했다"며 "경험이 없으니 거래를 따지 못하고, 거래를 따지 못해 경험을 쌓지 못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왜 국내 M&A조차 외국계가 주도하나

상식적으로 보면 국내 M&A는 국내 기업을 잘 아는 한국 금융사들이 유리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내 M&A에서도 매수·매도사 물색, 거래 가격 산정, M&A 전략 수립 등에서 다양한 글로벌 M&A 경험이 있는 외국계 회사들이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 대형 M&A 과정에서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국내사는 한계가 있다. 한천수 현대제철 전무는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들은 만기 10년 이상 장기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고 해외 자금 중개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M&A 등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시장은 외국계의 독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A를 추진하는 기업들은 풍부한 글로벌 M&A 경험에서 나오는 외국계의 방대한 DB(데이터베이스)를 한번 접하면 국내 금융사는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고 한다. 국내사가 M&A 건당 최소 수수료를 외국계(건당 최소 20억원)의 절반 정도인 10억원을 제시하는데도 그렇다.

외국계의 경우 M&A 이후 조직 관리 전략 등을 제공하는 등 ‘애프터서비스’까지 철저하게 해 준다.

국내사의 항변도 만만치 않다. 전병조 대우증권 IB사업부문 대표는 “국내 기업의 M&A 담당자들이 실패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도 무시 못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수술을 받을 때 동네 병원보다는 종합병원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M&A가 잘못됐을 경우 최고 M&A 전문가인 외국계에 조언을 받았음에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핑곗거리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에 외국계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 채권 발행도 들러리로 참여

국내 금융회사들은 한 해 400억달러(약 45조원)에 육박하는 국내 은행·대기업들의 해외 채권 발행에도 들러리로 참여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최성환 수출입은행 부행장은 "국책은행들이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할 때 구색 맞추기 식으로 국내 증권사를 1곳씩 참여시키고는 있지만, 국내사들의 해외 네트워크가 일천해서 실제 매수자를 찾아오는 등의 역할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해외 네트워크를 쌓고 경험을 축적하는 한편 강점인 국내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우선 ‘글로벌’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유성 회장은 “국내 시장에 매몰되다 보면 국내 M&A 거래에서도 밀려날 수밖에 없고, 국내사의 해외 채권 발행도 중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동남아시아 시장부터 나가서 전략적으로 해외 네트워크를 쌓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국내 증권사들이 같이 커 나갈 수 있는 중견, 강소기업들을 발굴해서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