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가 급발진 사태 직후 이뤄진 리콜 탓에 중고차값이 내려갔다며 피해를 주장하는 미국 차주들에게 거액을 보상키로 하면서 국내 급발진 사고 처리 결과가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서는 급발진 사고 피해보상은커녕, 제조사들이 급발진 사고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은 19일(현지시각) 도요타가 급발진 사고로 인한 리콜로 금전적 손해를 본 차량 소유자들에게 지난해 12월 제시한 합의금을 최종 승인했다. 도요타가 지급하기로 한 금액은 16억달러, 우리돈 1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번에 합의금을 받을 대상자는 2200만명에 육박하며, 합의금 규모는 미국에서 자동차 결함과 관련한 합의금 중 최대다.

2010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엘몬테의 도요타 딜러 점포에서 정비 직원이 2010년형 프리우스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이 점포는 리콜돼 들어오는 차량을 정비하기 위해 서비스 부문을 24시간 가동할 정도로 리콜 대상 차량이 많았다.

도요타는 지난해 연말 이 같은 보상 규모를 피해자들에게 먼저 제시했으며, 이번 법원 결정은 합의가 성사됐음을 인정하는 절차다. 이에 따라 급발진 사고에 대해 전적으로 운전자 과실이라고 버티고 있는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태도가 다시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해 자동차 결함신고센터(car.go.kr)에 신고된 우리나라 급발진 관련 사고 건수는 136건. 같은 기간 국내 자동차 총 등록대수(1880만대)와 비교하면 자동차 14만대 중 1대가 급발진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국내서는 급발진 사고를 당할 경우 피해 보상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제조사들이 급발진 사고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대·기아차 등 제조사들은 기계적으로 급발진이 일어날 수 없다며 운전자 과실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속페달을 브레이크인 줄 알고 잘못 밟았다는 뜻이다.

중재에 나서야 할 정부는 오히려 기업에 면죄부만 주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부터 '민·관 합동조사반'을 구성해 급발진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3차례 진행된 결과 발표는 모두 "자동차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로 동일했다. 이 같은 정부의 발표는 현재 법정에서 진행되고 있는 급발진 관련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전망이다.

2010년 3월 도요타자동차의 사사키 신이치 당시 품질보증 담당 부사장(오른쪽)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상무에너지교통 위원회 청문회가 끝난 후 제이 록펠러 위원장에게 머리를 숙이며 악수하고 있다. 이날 록펠러 위원장은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이 전자제어장치의 결함 가능성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해 제이 러후드 미 교통장관으로부터“이 문제를 철저히 들여다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미국이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자 청문회를 개최하고,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을 소환해 으름장을 놓았던 것과는 상반된 태도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급발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미국 정부나 우리나라 정부나 마찬가지"라면서도 "미국 정부는 사고 피해자가 금전적인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게 발빠르게 나선 반면, 우리 정부는 자동차 제조사에 면죄부를 준 것이 차이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