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난성에서 건축 재료 회사를 운영하는 궈친(50)씨는 연간 로열티로 3000만위안, 우리 돈으로 55억원의 수입을 올린다. 특허를 남에게 빌려 주고 벌어들이는 수입이다. 전자제품 금형 기술 관련 특허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특허 가운데 자신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 그는 매년 수백만 위안씩을 들여 이런 특허들을 사들인 뒤, 지금까지 여러 기업을 상대로 총 120건의 특허소송을 제기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전문 '특허 사냥꾼'인 셈이다. 평생 건자재만 다뤄오다 특허소송이 돈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2000년부터 전문적으로 나섰다. 막대한 부가 생겼고, 이제 대표적인 지역 유지로 통한다.

전동차의 출입문 제어장치를 만드는 중소기업 소명은 지난해 자금난을 맞았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장치를 국산화하느라 갖고 있던 자금을 모두 쏟아부어, 당장 제품을 만들 돈도 없었다. 그러던 지난 3월 한 자산운용사와 '특허 전세' 계약을 맺었다. 자신이 보유한 특허 소유권을 자산운용사에 넘기는 대가로, 50억원의 자금을 받은 것이다. 계약기간은 3년으로, 계약 종료 시 자금을 돌려주면 특허 소유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특허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특허 같은 지식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약했다. 남몰래 베껴 쓰다가 뒤늦게 소송을 당하거나, 거꾸로 남이 자기 것을 침해해도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특허 자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걸음마 떼기 시작한 국내 특허 금융

기존에 기업이 금융회사에서 자금을 대출받으려면 부동산 같은 담보를 제공하거나, 높은 금리를 주고 신용대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 시작된 특허 금융은 특허를 매개체로 해서 자금 거래가 이뤄진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특허를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계약 기간을 정해 특허 소유권을 넘기고 자금을 지원받는 것이다.

기업은행 등 은행들이 특허 담보대출을 최근 시작했다. 특허를 담보로 최저 연 3%대의 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뚜렷한 담보는 없지만 기술력이 있는 기업을 찾아 대출을 해주려고 한다"며 "새로운 대출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은행과 자금 지원이 절실한 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중에서 특허 전세를 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계약 기간을 정해 기업으로부터 특허 소유권을 넘겨받는 대신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자산운용사는 해당 특허를 침해하고 있는 기업을 찾아내 손해배상 소송을 걸거나, 특허를 원하는 다른 기업과 사용권 계약을 맺어 이익을 낼 수 있다. 김홍일 아이디어브릿지 자산운용 대표는 "지난 3월 투자를 시작해 실적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며 "문의를 해오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특허 금융의 투자 선순환 효과

특허 금융은 추가 투자를 유발하는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특허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는 것은 곧 해당 기업의 기술력이 인정받았다는 뜻이 되고, 이를 근거로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동차 출입문 제어 장치 업체 소명은 아이디어브릿지에 특허 32건의 소유권을 넘기고 50억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뒤, 보광창투 등 4곳의 벤처캐피털 업체로부터 12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극장용 3D 음향시스템 업체인 소닉티어는 아이디어브릿지와 20억원의 특허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15억원의 다른 투자를 이끌어 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자금융사들이 기업의 기술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특허 매매를 통한 자금 조달 경력은 투자를 위한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실적에 고무돼 특허뿐 아니라 상표권, 실용신안, 디자인 등 다양한 지식재산권(IP)을 금융 부가가치 창출의 대상으로 삼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특허 금융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이다. 충분한 자금이 공급되지 못해 기술력 있는 많은 기업이 여전히 특허 금융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금융사들은 기업의 기술을 제대로 평가할 잣대나 능력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국제 특허 출원 건수는 2011년 기준 1만447건으로 미국, 일본,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에 이른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돼 제품화에 실패하면서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우리의 지식재산권 사용료 국제수지는 매년 30억달러가량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좋은 특허를 보유한 기업들에 제대로 자금이 공급되지 못한 데 따른 결과이다. 김홍일 아이디어브릿지 대표는 "특허 중심의 벤처금융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허 금융

기업이 특허 같은 지식재산권을 매개로 대출을 받거나 지분 투자받는 것을 뜻한다. 대개 부동산 등 확실한 담보가 없으면 높은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특허 금융을 활용하면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