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의 저자 헤르만 지몬(Simon)과 유필화 성균관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학장이 최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만나 '한국에서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하는 법'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헤르만 지몬은 대담에서 "한국 대기업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업 분리를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계시장에 통할 수 있는 창의성 있는 중소·중견기업 육성법으로 '집중과 깊이'를 화두로 던졌다.

◇정부 개입과 중소기업 육성

유필화(이하 유): 요즘 한국 정부는 '상생협력'이란 이름으로 산업을 장악한 대기업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정부 개입이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헤르만 지몬(이하 지몬): 1911년 미국이 석유·광물 독점 개발을 방지하려고 스탠더드오일을 34개 회사로 쪼갠 것처럼 한국 정부도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재벌이 자발적으로 기업을 분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한국의 경제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왼쪽)과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학장이‘한국형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지몬은“한 가지 분야에 일생을 바치는 집중력에서 창의력을 갖춘 기업이 나온다”고 조언했다.

독일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은데, 회사를 분산시킴으로써 각각 그들만의 전략을 수립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특히 대기업을 분리할 때 새로운 사명(社名)을 만들 것을 추천한다. 치과 의료장비 시스템 회사인 시로나(Sirona)와 반도체회사 인피니언(Infineon)지멘스에서 떨어져 나와 성공했고, 특수화학기업 랑세스는 기존에 속해 있던 생물화학회사에서 나와 현재 독일 증시에 상장된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집중해야 창의적 중소기업 배출"

유: 중소기업이 창의성을 육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몬: '집중과 깊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야에 대해 자기 인생을 오롯이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밀레(Miele)라는 독일 세탁기 회사가 있다. 현재 80세를 넘긴 피터 진칸(Zinkann) 전 회장의 박사학위 논문은 세탁기의 고(高)압력 조절에 관한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한 분야에만 집중해 끝없이 파고든다. 그래야 창조력이 생긴다. 최근 흥미를 끈 사례는 영국 다이슨(Dyson)사의 먼지통이 필요 없는 진공청소기다. 그 회사는 먼지통 없는 청소기를 개발하기 위해 수년간 시제품 3000개를 만들었다.

유: 창의성·창조경제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기존 기술을 종합하거나 융합해 더 발전한 기술·상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몬: 창의성은 기존에 존재하는 두 가지를 결합시켜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1450년 독일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Gutenberg)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당시에는 글자 하나하나를 나무로 깎아서 인쇄했다. 구텐베르크가 살던 메인즈는 와인이 유명했던 지역이었는데, 그는 기존 인쇄 방식에 와인 제조 방식을 결합해 새로운 인쇄술을 발명했다. 압력을 가해 포도를 짜내는 기술을 인쇄술에 응용한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요소를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한 예다.

◇"중소기업의 세계화가 관건"

유: 많은 중소기업이 아직 세계화가 되지 않았다.

지몬: 협력업체들이 세계화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재벌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 공급업체 여러 곳을 알고 있다. 그중 한 곳은 일본 공장을 지어 도요타에, 독일 공장을 지어 폴크스바겐에도 공급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걸 달갑지 않게 본다. 현대차 공급업체가 세계화하는 걸 현대차가 제한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본다. 세계 일류 공급업체가 필요한 시점에서 자기의 공급업체가 세계화하는 것을 막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유: 한국에서 좋은 인재들은 중소기업에서 일하기를 꺼린다.

지몬: 미국에서는 스티브 잡스·마이클 델·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롤모델이다. 하버드대학에 재학 중인 내 아들도 "젊고 야망 있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대기업에서 일하기 싫어한다"고 말한다. 자기만의 회사를 차리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유능한 인재들이 창업하지 않고 중소기업을 꺼린다면 히든챔피언은 탄생할 수 없다.

유: 한국엔 '피터팬 증후군(기업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을 꺼리는 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몬: 프랑스나 독일 같은 경우에도 직원 수가 50명을 넘으면 규제가 세지고 세금도 더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많은 회사가 규모를 키우는 것을 꺼리고 있다. 물론 특이한 경우도 있다. 클라이스(KLAIS)라는 회사는 대형 무대나 교회에 쓰이는 크고 독특한 오르간을 만드는 독일 회사다. 125년 역사의 이 회사 직원이 현재 65명인데, 놀라운 것은 100년 전에도 직원 수가 총 65명이었다고 한다. 도쿄·베이징 등 전 세계에서 사업을 펼치는데, 회사 측은 현재 직원 수가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최적의 규모라고 말한다. 대형 오르간 시장은 규모가 한정적이다. 매년 세계적으로 5개가량의 프로젝트가 있고, 클라이스는 이 중 3개를 맡기 때문에 이 정도 직원 규모를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만약 대형 오르간 수요가 두 배 급증하더라도 그 수요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직원들을 교육해 전문가로 만들려면 몇 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례는 특별한 경우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기업은 성장을 계속해야 한다.

유: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죽은 것이다.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생각은 접고,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특혜를 받아서 성장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세계시장 점유율 1~3위이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매출액 40억달러 이하의 우량기업을 말한다. 헤르만 지몬의 저서에서 유래한 말로, 강소기업(强小企業·작지만 강한 기업)과 유사하게 쓰인다. 독일은 이에 해당하는 기업이 1000개가 넘는다.

☞중견기업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났으나 대기업에 속하지 않는 기업. 중소기업은 종업원 300인 미만이거나 자본금 80억원 이하인 기업. 대기업은 자산 총액 5조원이 넘는 상호출자제한집단이다. 국내 중견기업은 올해 기준으로 1422개가 있다. 전체 기업 중 차지하는 비중은 0.04%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