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41)씨는 노후 대비용으로 5년 전에 가입했던 월 30만원짜리 연금보험을 최근 해약했다. 9월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데 전세금을 2000만원이나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갑작스러운 연락 때문이었다. 이씨는 "원금을 200만원 정도 손해봤으니 아깝긴 하지만 수중에 목돈이 없으니 별도리가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예·적금이나 보험, 펀드 등 금융상품 가입자 10명 중 6명이 최근 1년 새 금융상품을 중도 해지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18~59세 남녀 794명을 분석해 10일 내놓은 '금융소비자의 중도 해지 및 환매 행태 연구'에 따르면, 과거 1년 내에 금융상품을 중도에 해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전체의 64%에 달했다. 중도 해지 경험자는 평균 2.2개의 금융상품을 만기가 되기 전에 깬 것으로 나타났다. 황원경 KB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장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이 떨어지는데 소득은 정체되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생계형 해약이 많았다"면서 "저성장으로 개인의 생활 여건이 개선되기 어려워 중도 해지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계형 해약 급증

KB금융지주에 따르면, 금융상품 중도 해지자 10명 중 6명이 30~40대였고, 월평균소득은 250만~600만원인 중소득층이었다. 금융상품 중에 가장 높은 해지율을 나타낸 것은 예·적금으로, 전체 금융소비자의 52%가 해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중도 해지한 이유로는 '목돈이 필요해서'와 '생활비가 필요해서'라는 응답이 70%를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예·적금의 중도 해지 비율이 특히 높은 데는 특수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황원경 KB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올해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2000만원으로 낮아지면서 과세를 피하기 위해 예·적금을 중도 해지한 고소득층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보험을 중도 해지한 비율은 23%였는데, 역시 '목돈이 필요해서'라는 이유가 30% 이상으로 가장 많았다. 연금보험과 같은 장기 저축성 상품을 해지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2012년 말 기준으로 생명보험사의 연금보험 5년 유지율은 전분기 대비 0.9%포인트 감소했다. 연금보험 중도 해지는 향후 노후 준비를 위협하는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황 연구원은 덧붙였다.

◇금융상품과 이별할 땐 순서가 있다

처음엔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금융 상품에 투자했지만 중간에 사정이 생겨 부득불 해지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손해를 줄이려면 몇 가지 요령이 필요하다.

첫째, 예·적금의 경우 만기가 한두 달 남은 경우 해약하면 원래 처음 가입할 때의 이자를 받지 못하고 중도 해지 이율(통상 1.25%)만 받게 된다. 이자 부분에서 손해가 크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대출 이자를 약간 물더라도 '예·적금담보대출'을 활용하는 게 좋다. 예·적금담보대출은 보통 가입액의 100%까지 빌릴 수 있고, 대출 이자는 '예금이자+1.25~1.50%포인트' 수준이다.

둘째, 절세형 상품은 중도 해지에 따른 부담이 크기 때문에 해약을 가장 나중 순위로 미루는 게 좋다. 가령 세금우대(1년 9.5% 분리과세)로 가입한 예·적금은 최소 1년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서 1년이 되기 전에 중도 해지하게 되면 절세 혜택이 사라진다. 특히 소득공제 혜택이 있는 연금저축 상품은 중도 해지 시 소득세(22%)도 부과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셋째, 보험은 초기에 중도 해지하면 원금조차 못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암(癌)보험이나 상해보험 등은 나이가 들어서 재가입하려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해약하기에 앞서 보험료를 담보로 대출받는 보험계약대출(공시이율+1.5%포인트)부터 확인해 보는 게 좋다. 해약환급금의 최대 95%까지 빌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