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펀드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우리나라 펀드 시장이 가장 참고할 만한 것은 일본의 펀드 시장이다.

1990년대 버블(거품) 붕괴와 더불어 장기 침체에 들어간 일본 경제와 마찬가지로 일본 펀드시장도 19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1989년 58조6000억엔이었던 펀드 수탁고(공모 기준)는 10년 가까이 지나면서 30% 정도 줄어들어 1997년 40조6000억엔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주식형 펀드 비중도 38.4%에서 11.8%로 축소됐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면서 펀드 시장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선다. 그런데 이 시기 펀드시장의 움직임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다.

우선 펀드 수탁고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했다. '펀드 고속 성장' 시대에서 '펀드 중속 성장' 시대로 바뀐 것이다. 펀드 수탁고 증가율은 버블 붕괴 이전(1985~ 1989년) 연평균 30.9%에서 2000년대(2000~2007년)에는 연평균 7.1%로 크게 하락했다.

수탁고 성장세가 감속한 것보다 중요한 변화는 투자 성향 변화로 인해 펀드 포트폴리오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하면서 국내 안전자산 투자만으로는 적절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외 채권형 펀드와 멀티에셋펀드 등의 중위험·중수익 펀드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게 됐다.

2000년 이후 일본의 경험을 살펴보면, 일본 펀드시장의 트렌드 변화가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우리 펀드시장에 소개되기 시작한 대표적인 은퇴 관련 펀드인 월지급식 펀드는 일본 시장에서는 이미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일본은 2001년 1조2000억엔에 불과했던 월지급식 펀드 수탁고가 2011년 33조2000억엔 수준으로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