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에서 나오는 폐자원인 왕겨가 노트북과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소재로 재탄생했다. 왕겨는 낟알을 보호하는 겉껍질. KAIST EEWS(에너지·환경·물·지속가능성) 대학원 최장욱 교수와 생명화학공학과 박승빈 교수 공동 연구진은 8일 "왕겨에 있는 실리콘 산화물을 분리하고 정제해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음극소재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8일자 인터넷판에 주요 연구 성과로 실렸다.

벼가 전기차 동력으로 바뀌는 과정.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벼, 왕겨, 왕겨에서 추출한 흰색 실리콘 산화물 분말, 실리콘 산화물에서 산소를 뗀 노란색 실리콘 분말, 미세 구멍이 나있는 왕겨 실리콘의 전자현미경 사진, 왕겨 실리콘 음극이 들어간 이차전지를 사용할 전기차다.

이차전지는 충·방전이 가능한 전지다. 음극에 저장된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전자의 이동을 가져와 전류가 발생하는 원리다. 음극 소재로는 흑연이 99%를 차지한다. 단점은 무게당 리튬 저장용량이 적다는 것. 이는 이차전지의 사용 시간을 짧게 한다. 최근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리튬 저장 능력이 흑연의 3~5배나 된다.

하지만 실리콘은 충·방전으로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면 잘 부서지는 단점이 있다. 연구진은 미세 구멍이 나 있는 왕겨의 실리콘 산화물 막에 주목했다. 왕겨의 실리콘 산화물 막은 해충과 세균을 차단하면서, 낟알이 필요한 공기와 수분은 미세 구멍으로 자유롭게 통과시킨다. 연구진은 화학반응을 통해 왕겨의 실리콘 산화물에서 산소를 떼어내 음극 소재로 쓸 수 있는 실리콘으로 바꾸었다. 구멍은 그대로 남겼다. 덕분에 팽창·수축을 거듭해도 전보다 힘을 덜 받기 때문에 잘 부서지지 않는다.

흑연 음극은 충·방전이 500번 정도 가능하지만, 실리콘은 50번에 그친다. 최 교수는 "미세 구멍이 나 있는 왕겨 실리콘은 일반 실리콘과 달리 400번 이상 충·방전을 해도 문제가 없었다"며 "왕겨 실리콘 음극을 쓰면 이차전지 수명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