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공급된 'DMC 가재울 4구역' 아파트는 모처럼 서울에서 1500가구가 넘는 일반 분양 물량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8일 1~3순위 청약을 실시한 결과 아파트를 사겠다고 나선 사람은 530여명에 그쳤다. 평균 청약 경쟁률이 0.35대1. 17개 주택형 중 순위 내 마감을 기록한 것은 전용 59㎡짜리 단 하나뿐이었다.

재개발 지역에 들어서는 이 아파트는 조합원 물량까지 합하면 아파트 61개동(棟)의 총 4300가구 규모 대단지다. 서울 도심에 들어서는 미니 신도시급 아파트 단지로 주목을 받았다. 모델하우스 개장 후 주말 3일간 약 2만여명이 몰리기도 했지만 결과는 딴 판이었다.

한때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앞세워 분양 시장에서 보증 수표로 여겨졌던 대단지 아파트가 최근 잇따라 부진을 겪고 있다.

분양 시장에서는 대단지 아파트가 중소 규모 단지 아파트보다 강점이 많다는 게 통설이었다. 우선 입주민들이 관리비를 분담할 수 있어, 운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수영장처럼 선호도 높은 공용시설을 들일 수 있다. 단지 내 공원 등 각종 조경도 풍성하게 갖춰진다. 또 인구가 한 지역에 밀집돼 지자체에서 도시 계획을 세울 때 도로나 학교 등을 가깝게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규모가 크다 보니 각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 퍼스티지' '반포 자이' 아파트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도 불황을 극복하기엔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오히려 대단지 아파트의 물량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커지고 있다. 자칫 지역의 공급 과잉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시장 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에서는 단지의 큰 규모가 되레 독이 되고 있다. 김포와 고양시가 대표적이다. 지난 1일 청약 접수를 받은 경기도 '김포 풍무 푸르지오 센트레빌'의 경우 대단지 아파트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곳곳에 내세웠지만 2710가구에 청약자 2280여명이 몰리는 데 그쳤다.

대형건설사인 대우건설·동부건설이 전면에 나섰고, 숙명여대와 협약을 맺어 국내 최대 규모(어린이 220명) 어린이집을 짓기로 했다. 평면 종류도 14개를 만들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는 등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지난달 말 2375가구가 일반 분양된 주상복합 아파트 '일산 요진 와이시티'도 마찬가지다. 대형 쇼핑몰, 극장, 업무용 빌딩, 공원 등이 한데 들어서는 복합단지 내 주거지역이라는 점을 앞세웠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1400여명이 청약해 미분양 물량만 1300가구 넘게 생겼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김포와 고양시 모두 2400~2500가구 규모의 미분양 물량이 남아있는 상태다. 부대시설로 차별화를 시도하기엔 불황의 골이 너무 깊었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에서도 이미 대단지 아파트 분양이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분양도 쉽지 않거니와 2~3년 후 주민 입주 때도 난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입주를 마쳐야 통상 분양가의 30% 안팎인 아파트 잔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분양 사태, 주택거래 부진 등이 겹치면 건설사도 자금 운용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 일산 식사지구에서 공급된 4600여가구 '일산 자이 위시티'는 입주 후 약 3년이 지났지만 최근까지 분양·입주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 올 하반기 인천·수원·고양 등에서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를 공급하는 SK건설·한화건설·현대산업개발 등도 분양 일정과 마케팅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 팀장은 "다양한 시설과 규모로 승부하는 대단지 아파트가 좋은 성적을 내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며 "가격이 아예 저렴하거나 입지나 평면 등으로 차별화하지 못하면 불황을 뚫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