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 조어대(釣魚臺·영빈관). SK이노베이션 구자영 부회장은 중국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시노펙(Sinopec) 왕톈푸(王天普) 총경리와 우한(武漢) 에틸렌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맺었다. SK 최태원 회장과 왕톈푸 총경리가 2006년 4월 합작을 추진하기로 한 지 7년여 만의 결실이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합작법인이 설립되면 지분 35%를 4113억원에 인수할 예정이다.

7년 기다림 끝에 막판 반전 성공

'W-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사업은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 석유화학공단 내 294만㎡(약 89만평) 부지에 연간 에틸렌 80만t, 폴리에틸렌(PE) 60만t, 폴리프로필렌(PP) 40만t 등 석유화학 제품 250만t을 생산하는 합작법인을 세우는 계획이다. 도로와 철도 교통의 요지이자 서부 대개발의 전진기지인 우한에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공장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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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와 시노펙이 합작에 합의한 것은 2006년 4월. 하지만 2007년 4월 시노펙이 단독으로 사업 승인을 받고 그해 12월 착공식을 독자적으로 열자, 주변에선 "SK 참여가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금융위기 영향으로 2009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가 국내 기간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허가를 미루면서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중국 내부에서 외국 자본 유치에 대한 비판 여론까지 일었다.

2011년 초 최태원 회장은 사업 추진에 대한 시장의 회의적인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올해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상황은 지난해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최 회장과 왕톈푸 총경리가 다시 만나 향후 계획을 협의하는 등 드라이브를 걸면서 긍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결국 올 2월 대형개발사업에 대해 종합심사를 하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합작 승인을 한 데 이어 5월엔 중국 최고행정기관인 국무원에서 사업을 비준했다.

SK그룹 관계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뚝심으로 막판 반전을 이뤄냈다"며 "끈질긴 설득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세계적 석유화학 업체들과 어깨 나란히

SK는 이번 계약으로 세계 최대 석유화학 시장인 중국에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중동과 미국 등에서 값싼 원료를 기반으로 한 제품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 SK가 중국 내에서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우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에틸렌과 폴리에틸렌 등은 각종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원료다. 지난해 3100만t이었던 중국 내 석유화학 제품 수요는 2017년이면 4060만t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점도 큰 수확이다. 중국에서 에틸렌 사업을 진행하는 외국 기업은 SK를 포함해 7개사뿐이다. BP·셸·엑손모빌·바스프·사우디 아람코·사빅 등 석유 메이저들만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김평중 연구조사본부장은 "중국 시장은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대형 회사들만 진입할 수 있던 곳"이라며 "기술력 등에서 이들 메이저와 대등한 수준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