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원들과 기타 치고 탁구 하는 게 단순히 회사 분위기 좋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대기업의 가격 후려치기에 맞서려면 최고의 인재가 있어야 합니다. 문화 경영은 인재를 구하고 지키는 무기입니다."

재료 분석 전문업체인 케이맥은 지난해 매출 210억원을 올린 작은 회사다. 그런데도 이중환(李仲煥·57) 사장은 '문화 경영' 이름으로 사내 동아리 활동과 복지 시설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전체 직원 270명 중 60%가 검도·밴드·바둑·가야금·클래식 기타 같은 18개의 동아리를 구성해 활동한다. 헬스장도 있고 탁구대, 전신 안마기, 직접 요리가 가능한 주방, 와인과 양주가 즐비한 바(bar)까지 갖췄다. 사옥 옥상에는 정원을 조성해 시원한 밤하늘에 바비큐 파티도 연다.

"임원과 직원이 같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 사내 언로(言路)가 확보됩니다.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는 회사에 사원들이 당연히 애착을 갖고 열심히 일하게 되죠."

이중환 케이맥 사장(오른쪽)과 직원들이 분자 모형을 들고 원자 수준의 두께 측정을 위한 기술 토의를 벌이고 있다.

이 사장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물성분석실장으로 재직하던 1996년 예기치 못한 창업을 했다. 부산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 사장은 ETRI에서 15년간 반도체 재료의 결함을 찾아내는 물성 분석 작업을 수행했다. 통신 연구 위주의 ETRI에서 반도체의 물성을 연구하는 물성분석실은 푸대접받기 일쑤였다. 급기야 분석실을 폐쇄하라는 얘기를 상사한테 듣고 불쑥 "그러려면 스핀오프(spin-off·분사)하시죠"라고 답했다. "정말로 분사하는 바람에 창업했습니다."

이 사장은 창업 초기 연구소, 대학의 시료(試料)를 분석하는 서비스에 집중했다. 2000년대 들어 시료 분석 장비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액정디스플레이(LCD) 제작 공정에 필수적인 검사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회사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삼성·LG를 비롯한 세계 LCD 제조사들은 5단계의 노광(露光·빛으로 회로를 그리는 작업) 공정을 4단계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신공정에서 나온 제품이 이전 공정의 제품과 동일한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였다. 케이맥은 400~800㎚(나노미터·1㎚=10억분의 1m)의 LCD 두께를 2차원으로 측정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삼성이 케이맥의 신기술에 머뭇거리는 사이 LG디스플레이가 케이맥의 신제품을 먼저 채택했다. 이 때문에 LG디스플레이의 수율이 삼성을 앞서기도 했다.

케이맥은 신제품 덕택에 2004년 전년 대비 3배 이상의 신장세를 보여 1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당시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다고 평가했다. "술자리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일은 내가 다 하고 옆의 놈은 놀기만 한다'는 말이 언제나 나왔습니다. 동료애도 없고 모래 알갱이 같은 조직이었습니다. 이직률도 매우 높았습니다."

이 사장은 이때부터 주인 의식을 가진 직원을 채용하는 데 주력했다. "신입 사원에게 회사의 목표와 역사를 알려주고 내 말에 감동을 받아 부르르 떠는지 봅니다. 감동이 없으면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졸업자가 지방 중소기업에 다니지 않습니다." 2006년부터 문화 경영도 시작했다.

이 사장은 지식 경영 차원에서 매주 금요일 팀별 세미나를 열고 있다. "솔직히 우리 회사에 일류 인재가 오지 않아요. 대안은 지식 경영으로 인재를 자체적으로 키우고 언로를 확보해 키운 인재를 대기업에 뺏기지 않는 방법 말고는 없습니다."

이 사장은 대기업의 납품 가격 후려치기로 고생이 많다고 했다. 그래도 케이맥은 지금도 원가 이하의 납품을 요구하면 매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단호히 거부한다. 최고의 인재를 보유하면 대기업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