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삼익아파트 136㎡를 전세금 2억5000만원에 살던 세입자 박모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살던 집이 경매에 부쳐진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박씨는 전세금이 떼일까 걱정했고,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살던 집이 감정가(10억원)의 70% 수준인 7억100만원에 최근 낙찰되면서, 선순위 저당권을 설정한 은행들이 먼저 자금을 회수해가며 전세금을 모두 떼인 것이다.

서울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아파트 122㎡에 살고 있는 김모 씨도 유사한 경우. 보증금 7500만원을 내고 반전세로 살았지만, 집주인이 아파트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경매에 들어가자 보증금을 전부 날렸다. 감정가 10억원짜리인 이 아파트가 8억2300만원에 매각되면서 선순위 채권자였던 은행이 전부 회수해갔다.

경매에 나온 아파트의 부동산 세입자 중 전세금이나 보증금을 떼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주택을 팔더라도 대출과 전세금을 갚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전세'가 대거 늘어나 계약 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동산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올 들어 경매로 나와 낙찰된 수도권 소재 주택(아파트, 다세대, 다가구) 물건 9642개(17일 기준)를 조사한 결과, 세입자가 있는 물건 수는 5669개, 세입자 보증금이 전액 배당되지 않는 물건 수는 4453개로 집계됐다고 20일 밝혔다.

서울 중앙지법 경매장 모습

이는 곧 경매부동산 세입자 중 78.6%가 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용도별로는 다세대 물건에서 임차보증금 미수 발생 비중이 높았다. 올해 경매장에서 낙찰된 수도권 소재 다세대 물건은 3217개였는데 이 중 세입자가 존재하는 물건은 2178개였고 여기서 임차보증금 미수가 발생한 물건은 1800개로 비중은 82.6%에 달했다.

아파트의 임차보증금 미수 발생 비중도 높았다. 세입자가 있는 상태에서 경매로 나와 낙찰된 수도권 아파트 중 76.2%(2259건)가 세입자가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한 경우다.

임차보증금 미수 비중이 느는 이유는 수도권의 주택 시세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아서다. 중·대형아파트가 경매로 나올 경우 감정가의 60% 이하로 낙찰되는 경우가 많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대홍 부동산태인 팀장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집값이 내려가면서 낙찰가율도 동반 하락했다"며 "예전 같으면 부채 규모가 집값의 70% 선만 돼도 안전하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60%만 넘어도 보증금을 다 못 돌려받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유정 지지옥션 선임연구원도 "현재 감정가로만 아파트 가치를 판단하게 되면 만약의 경우 전세금을 날릴 가능성이 있다"며 "소액임차인 변제금 내에서 보증금을 거는 것이 좋지만, 우선은 채권 총액을 열람해보고 계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