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0만명의 작은 도시 독일 뮌스터시(市)는 세계 미술 애호가 사이에선 꽤 유명한 곳이다. 1977년부터 시작된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uenster)' 덕분이다. 이 행사는 여느 지역 축제와는 사뭇 다르다. 무려 10년에 한 번 열린다는 점이 그렇고, 최고 권위의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구상하고 도시 안에 마음껏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 또 그렇다. 그해의 최고 작품으로 선정된 것은 시가 사들여 영구 전시한다. 미술가와 관광객이 몰려들자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도심 곳곳의 조각품을 관광하는 프로그램이 조성돼 '유럽에서 자전거 타기 가장 좋은 도시'로도 꼽히게 됐다.

김연정 객원기자

이윤철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은 "2007년 뮌스터를 방문했을 때, 한 평범한 야외 주차장에 설치됐던 빨간 앵두 조각품이 기억난다"며 "앵두 작품이 몇 년도 어떤 작가가 어떤 의미에서 설치했던 것인지 등 하나하나가 스토리가 되어 도시 전체의 브랜드를 형성, 뮌스터가 불과 30여년 만에 세계적인 예술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먹을거리나 역사 속 인물 중심의 축제 만들기 일색의 지역산업을 조성하는 국내 지방자치단체가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산업정책연구원은 국내 81개 도시 경쟁력과 지역산업 정책 등을 평가하고, 국가·기업 브랜드 자산가치를 연구하는 전문 기관이다.

이 이사장은 "초단기적으로 기획하고, 이웃 지자체의 성공 사례를 베끼고,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다시 갈아엎는 식의 지역 산업은 곤란하다"면서 "인구가 얼마나 유입되는지, 경제 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로 인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어느 정도 개선됐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인 지자체 사업을 꼽는 기준으로 '자연미인론(論)'을 들었다. "부산 사하구 감천마을은 애초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관광'으로 연결됐습니다. 예쁘고 살기 좋은 마을로 변하자 관광객이 자연스레 몰린 것이지, 일부러 관광객을 끌려고 꾸민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전국에 경관 좋은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요? 지역 주민의 삶과 연결 안 되는 '성형미인' 같은 관광사업은 곤란합니다. 감천마을 같은 자연미인이 결국 사람을 끌어모읍니다."

그는 민선 지방자치 19년째에 접어들면서, 지역별로 지방 경영의 실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과거에 매몰된 일부 지자체장들은 그 자리를 '벼슬'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자체장은 세일즈맨이 돼야 합니다. 우포늪 관광 하나만으로 살아갈 뻔했던 창녕이 넥센타이어 같은 큰 기업을 유치한 것을 보고 주변 지자체들은 뒤늦게 '아차!' 했을 겁니다. 이제 이웃 지자체끼리 철저히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갑(甲)이 아닌 철저한 을(乙)이 되어서 '고객'인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발로 뛰어야 하는 이유지요."

기아차 공장이 있는 미국 조지아와 현대차 공장이 있는 앨라배마주는 서로 이웃해 있다. 이 두 곳의 주지사가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만나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와 "우리 주에 공장을 더 지어달라"고 경쟁하는 모습이 좋은 예다. 이윤철 이사장은 "이제까지 대규모 제조업 덕분에 먹고 살 고민이 없었던 지역들조차,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본격화하는 머지않은 미래에는 세일즈맨처럼 뛰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품경제가 꺼진 1990년대 일본 지자체들이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 단계로 볼 때, 이제 주력 산업이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해 지방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중앙 정부가 지급하는 특별교부금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지역 경쟁 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게 된 지자체는 앞으로 어떻게 먹을거리를 찾아야 할까. 이 이사장은 "엄밀히 말해 사양사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으로 떠났던 신발 공장이 기업 경영하기 좋은 도시로 변모한 지자체로 돌아오기도 하거든요. 다만 지자체 역시 혁신이 필요합니다. 기업에 인력을 지원해줄 방법, 인프라를 조성할 유연한 해법 등을 짜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어느 지역이 기업에 더 창조적인 패키지를 제시하느냐의 아이디어 싸움을 벌이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산업정책연구원(IPS)

1993년 국내외 경쟁 환경과 미래의 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정부와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책·전략 개발을 목적으로 상공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설립됐다. 주요 연구 활동은 세계 각국의 산업정책에 대한 학술 연구, 정부에 대한 정책 자문, 기업 전략 개발 등이다. 전문가 네트워크로 구성된 35개의 연구센터를 운영하며, 축적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기적인 학술 세미나와 심포지엄을 활발히 개최하고 있다. 경쟁력본부, 브랜드·디자인본부, 지속경영본부, CSV본부 등 4본부, 6팀 체제로 이뤄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