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 국내 스마트폰 제조 3사가 단말기 출고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초부터 연이어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일부 기종은 100만원에 육박했던 가격이 50만원대로 떨어져 '반값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동안 스마트폰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었음을 제조사들이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조금 빙하기' 오자 가격 인하 경쟁

LG전자 '옵티머스 G'와 팬택 '베가 R3'의 최초 출고가는 100만원에서 100원 모자란 99만9900원이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59만9500원까지 떨어졌다. '반값폰'이 될 때까지 옵티머스 G가 세 차례, 베가 R3가 두 차례 가격을 내렸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5월 출시한 갤럭시 S3 출고가를 지난달까지 세 차례에 걸쳐 내렸다. 출시 당시 96만1400원에서 89만9800원(2013년 1월)→79만9700원(4월)→69만9600원(5월)으로 계속 떨어졌다.

LG전자 '옵티머스 뷰2', 삼성전자 '갤럭시팝' '갤럭시 그랜드', 팬택 '베가 S5 스페셜' 기종도 10만~36만원씩 출고가가 내려갔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출고가 인하 경쟁이 벌어지는 건 국내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제조사나 이동통신사들은 "정부 규제로 휴대전화 보조금이 줄어들면서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말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불법 보조금으로 시장을 과열시켰다"며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 과징금 53억원을 물렸다. 이후 보조금이 급격히 줄면서 '보조금 빙하기'가 왔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체감상 국내 스마트폰 판매 시장이 20%는 줄었다고 느껴질 정도"라며 "침체된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제조사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재고를 털어내려는 목적도 있다. 휴대전화는 제조사가 통신사에 단말기를 공급하면 통신사가 대리점을 통해 판매하는 형태로 유통된다. 통신사가 악성 재고를 잔뜩 끌어안고 있으면 제조사 입장에서는 신제품을 추가로 공급하기 어려워진다. 통신사도 최신 기종을 확보해야 가입자 유치에 유리하기 때문에 재고를 정리하려고 가격을 내린다는 것이다.

제조사 분위기가 다 똑같지는 않다. 삼성전자·LG전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스마트폰 해외 판매 비중이 80%를 넘기 때문에 국내 시장이 위축돼도 타격이 적다. 반면 스마트폰 50% 이상을 국내에서 파는 팬택은 울상을 짓고 있다. 팬택은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아 삼성이나 LG에 비해 '빙하기'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했다.

"출고가 부풀리기 스스로 인정한 것"

그동안 정부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스마트폰 출고가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왔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통신사와 제조사가 짜고 휴대폰 가격을 부풀린 뒤 보조금을 지급해 마치 싸게 파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속여 왔다"며 총 454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통신사와 제조사들은 공정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반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통신비 경감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출고가를 내리는 것이지 가격 거품 때문에 내리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조사들의 출고가 인하는 그동안의 가격 거품을 자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격을 그만큼 낮춰서 팔아도 된다면 애초에 값을 더 싸게 매길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사무국장은 "계속해서 가격을 내리는 것은 이동통신사와 제조사들이 실제로 적정 가격보다 부풀린 값을 매겨 놓고 할인해 판매하는 것처럼 영업해 왔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정진한 연구위원도 "이렇게까지 가격이 떨어지는 걸 보면 그동안 출고가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출고가가 내려간 모델은 대부분 구형·보급형 모델이다. 3사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 S4'(삼성), '옵티머스 G프로'(LG), '베가 아이언'(팬택) 출고가는 변하지 않고 있다. 제조사들이 인기가 떨어지는 모델의 출고가를 내려 재고를 털면서 선심 쓰듯 생색을 낸다는 반응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