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대 서울대 교수

2013년 현재 우리 나라 평균 수명은 남자 77세, 여자 84세다. 10년 전보다는 4.8세, 40년 전보다는 18.9세가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평균 수명 100세 시대도 머지않았다. 미래의 역사학자는 지금을 가리켜 ‘의료 혁명의 시대’라 부를 것이다. 이런 의료 혁명에 기여한 것으로는 흔히 페니실린, 마취제, 유전자 해독 등을 꼽는다. 하지만 정작 숨은 공로자가 ‘데이터’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인류의 수명 연장에 결정적인 것 중 하나가 실은 위생이었다. 요즘은 귀가 후 손 씻기나 더러운 병 소독하기가 상식이다. 하지만 200년 전만 해도 그런 생각조차 희박했다. 1854년 러시아와 유럽 연합군이 벌인 크림전쟁 때 얘기다. ‘백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 파병됐다. 그녀는 이곳 야전 병원에 후송된 군인들을 간호하면서 야전병원의 위생 상태에서 경악했다. 부상병들의 옷과 침대 시트는 피범벅 그대로 재활용됐고 붕대와 주사기도 몇 번씩 재사용되고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치료를 하면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후송된 군인의 부상 정도와 질병 및 사망 여부 등을 매일같이 기록했다. 2년 동안 모인 자료를 분석해 봤다. 놀랍게도 전쟁 부상보다 병원에서 2차 감염으로 죽어가는 병사가 더 많았다. 보고서를 썼다. 이걸 본 영국 정부는 야전 병원의 위생 상태를 개선했다. 그 뒤 부상병의 사망률은 42%에서 2%로 격감했다. 나이팅게일은 그 뒤 영국왕립 통계학회 회원이 됐다.

지금은 상식이 된 여러 의료 정보들도 사실은 대량의 자료 분석에서 나왔다. 19세기 런던에 창궐했던 콜레라 사건은 의료 혁명에서 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하는 사례다. 1954년 영국에서는 사상 최악의 콜레라가 발병해 사흘 만에 100명 넘게 숨졌다. 열흘 후엔 사망자 수가 500명을 넘어갔고 결국 600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끝났다. 당시 사람들은 콜레라가 공기로 전염된다고 믿었다. 의사였던 존 스노우는 예외였다. 발병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지도 위에 정리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사망자들이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는 물펌프 중심으로 퍼져 있었다. 결론은 ‘콜레라는 공기가 아닌 물로 번지는 수인성(水因性) 전염병’. 스노우의 노력으로 사람들은 그전까지 역병은 신의 분노라고 믿었던 미신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역병 피해도 크게 줄였다. 요즘 기승을 부리는 SARS,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도 자료 분석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의료 혁명에 최근 또 하나의 ‘터보 엔진’으로 떠오른 것이 빅데이터라 할 수 있다. 빅데이터를 통해 보다 정확하고 빠른 진단과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화된 환자들의 진료 기록인 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자료를 활용한 시스템이 개발돼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IBM과 의료보험회사인 웰포인트(Well Point)가 합작으로 3000여만명의 환자기록을 통합 분석해 복잡한 치료 방법을 탐색하고 이것을 의료진들이 진단과 치료에 실시간 활용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2억쪽에 달하는 환자 진료 기록을 단 3초만에 검색하고 분석해 최적의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환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치료 및 진료를 줄일 수 있다. 또 만성질환 환자를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해 고령화 사회에서 국가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데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중환자의 상태를 센서로 모니터링해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이상 징후를 자동 탐지하는 시스템도 개발됐다. 이 시스템은 미숙아 관리에 적용돼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개인 유전자 정보 분석을 통한 맞춤형 처방 (personalized medicine)에도 빅데이터가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맞춤형 처방이란 한의학의 사상의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같은 증상의 환자라도 개별 특성에 따라 치료법이 달리 하는 접근법이다.

특히 환자의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하는 접근법은 현재 대부분의 큰 병원에서 시도되고 있다. 가령 암수술을 받은 환자가 수술 후에는 어떤 치료를 받을지, 다시 말해 약물 치료를 받을지 방사능 치료를 받을지 등을 결정 할 때 유전 정보 데이터가 활용된다.

최근 화제가 된 미국 유명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선제적인 유방암 절제 수술’에도 빅데이터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녀는 스스로 암이 발병하기도 전에 예방 차원에서 양쪽 유방을 절개했다고 고백해 충격을 줬다. 이유는 가족력과 본인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예측한 유방암 발병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데이터로 예측한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뉴스다. 앞으로 의료 혁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대변해 준다고 하겠다.

이처럼 빅데이터는 앞으로 의료 혁명을 더욱 가속화시켜 평균 연령 100세 시대를 성큼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유의할 점이 있다. 여기에는 EMR 자료 등의 빅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빠르게 검색하는 기술 말고도 자료에서 올바른 정보를 추출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통계 분석에 대한 해독 역시 대단히 숙련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가령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자수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의 수)를 비교한다고 치자.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면 익사자수도 덩달아 늘어나는 통계적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아이스크림이 물에 빠져 죽는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면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청량음료 판매량과 소아마비 발생률 통계가 있다. 청량음료가 많이 팔리면 소아마비가 증가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실제로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초등학교에서 청량음료 추방 운동이 전개된 적 있다. 물론 청량음료는 소아마비의 원인이 아니다. 그저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온도 상승과 더불어 활동력이 강해져서 생기는 동반 착시 현상이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청량음료 판매를 금하는 것은 소아마비 때문이 아니고 아동 비만 우려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의료 지식 중에도 이런 지식은 없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모유가 분유보다 아기 건강에 좋다”는 ‘상식’도 검증돼야 할 것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