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국내 생산 비중이 30%대로 떨어지는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국내 생산을 앞지르는 '생산 역전'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핵심 공장은 국내에 두고 세계시장 개척을 위해 조립 공장을 외국에 세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최근엔 핵심 공장까지 해외로 이전하는 기조로 바뀌고 있어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9일 본지가 현대차 국내·외 총생산량 추이를 분석한 결과 국내 생산 비중은 올 들어(1~5월) 38%까지 떨어졌다. 작년 같은 기간(45%)보다 7%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비중만 줄어든 게 아니라 실제 생산량도 6만대 가까이 줄었다.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을 놓고 노사 갈등이 빚어져 3월부터 석 달간 주말에 공장을 놀린 여파가 컸다. 같은 기간 현대차 해외 생산량은 작년보다 23.5% 늘었다.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현지 전략형 소형차‘쏠라리스’를 조립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중국·러시아·브라질·체코 등에 합계 연간 생산량 150만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지었다.

현대·기아차 양사를 합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두 회사의 국내·해외 생산 비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49대 51로 해외 생산이 앞섰고, 올 들어 이 수치는 45 대 55로 더 벌어졌다.

삼성전자는 2011년 9월 화성 사업장에서 반도체 16라인 준공식을 가졌다. 그리고 현재 17라인을 건설 중인 것을 빼면 최근 국내에서 대규모 공장 준공·기공식을 연 적이 없다. 대신 이 기간에 각각 수조원이 드는 중국 시안(西安)의 반도체 공장,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비메모리 공장, 베트남 휴대폰 공장 확장 등을 발표했다. LG전자는 2010년 비주력 분야인 구미 태양전지 공장 기공식을 연 것을 제외하고는 대규모 국내 공장 신설 발표를 하지 않았다.

◇"삼성 휴대폰 메카는 구미가 아니라 하노이"

기업들은 해외 공장 투자에 대해 "수요 있는 곳에 공장이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 수요처에 가장 가까운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한 전문가는 "비싼 땅값과 세금, 기업에 비우호적인 사회적 분위기 등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경우 강성 노조와 생산성 저하 탓이 크다. 기아차는 2011년 연간 생산능력 50만대 규모의 광주 공장을 62만대 체제로 증설하기로 결정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이 계획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노사 갈등에 노노(勞勞) 갈등까지 겹친 탓이다. 같은 기간 현대차 터키 이즈미트 공장에선 10만대에서 20만대로 증설하는 공사를 순식간에 마쳤다. 한국 공장과 달리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섞어서 생산할 수 있는 혼류(混流) 생산 체제를 갖추고, 3교대 근무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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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생산 중심지도 해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2007년 삼성전자는 베트남 하노이에 휴대폰 생산 기지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당초 한국 구미 공장에선 프리미엄폰을 만들고, 베트남에선 저가 제품을 생산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달라졌다. 2007년 구미 공장에서 생산한 휴대폰은 8100만대였지만, 작년 생산량은 3800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삼성의 전체 휴대폰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하노이 공장에선 구미의 3배가 넘는 1억2000만대를 만들고 있고, 생산품의 99%가 고가 스마트폰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휴대폰의 메카는 이제 구미가 아니라 하노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 저성장 기조 심화 우려

핵심 생산 공장의 해외 이전은 국내 낙수(落水·대기업 성장이 다른 산업으로 퍼지는 것) 효과를 줄인다. 현대차 매출은 2006년 27조3354억원에서 2011년 42조7740억원(개별 재무제표)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이 기간 국내 인력 고용은 5만4973명에서 5만7303명으로 단 2330명이 늘었을 뿐이다. 같은 시기 해외 인력은 1만9781명에서 2만9125명으로 9344명 증가했다. 현대차 성장 과실을 해외에서 누린 셈이다.

이 추세는 국내외 직접투자에서도 나타난다. 작년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236억3000만달러인 데 비해 외국인 직접투자는 50억달러에 불과했다. 국내에 들어온 돈보다 해외로 나간 돈이 5배가량 많다는 얘기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기업이 국내에 새로운 투자를 줄이고 주력 산업까지 해외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위기의식을 가지고 산업 경쟁력 확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