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던컨 지음ㅣ김아림 옮김ㅣ생각과 사람들ㅣ134쪽ㅣ9000원

미국에서 음반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소매점인 월마트에는 보통 4500장 정도의 음반이 진열돼 있다. 공간의 제약 때문에 잘 팔리는 음반 위주로 진열 품목 수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상위 200위 안에 드는 음반들이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무작정 진열 품목 수를 늘리는 건 효율성도 떨어진다.

반면 온라인 음악 판매업체인 랩소디는 150만곡 이상을 서비스하고 있다. 10곡짜리 음반으로 치면 15만장이 넘는다. 이 중 다운로드 받은 순위로 2만5000번째를 넘어서는 곡들은 월마트 매장에는 아예 없는, 비인기 상품들이다. 그런데 아무도 찾을 것 같지 않은 이들 노래가 랩소디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한 곡 당 매출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지만, 비인기 상품들도 합치니 '티끌 모아 태산'이 된 것이다.

미국의 IT 전문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은 2006년 이 점에 착안해 인기도를 세로축으로, 상품 판매량을 가로축으로 두고 전자 상거래 업체의 판매 곡선을 그려봤다. 그래프를 보니 아마존, 넷플릭스, 랩소디 등 온라인 상거래 업체들의 매출 그래프에는 불룩 솟아오른 머리부분에 이어 길게 늘어지는 꼬리 부분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른바 '롱테일(long tail)'이다. 오프라인과 달리 진열 공간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인터넷 세계의 특성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알파벳 대문자 'L'자를 닮은 '롱테일 그래프'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제 롱테일 그래프는 온라인 상거래 업체들이 매출을 분석하는 데 핵심 자료로 쓰인다. 운송료나 저장비 등 부대 비용이 적은 상품을 찾아내거나, 전체 시장에서 진짜로 수익을 올린 분야가 어딘지, 적재적소를 공략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좋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이전에 재무제표나 매출 분석 보고서 등 숫자가 적힌 복잡한 서류를 보고 알아차리지 어려웠던 점을 인기도와 판매량을 축으로 하는 간단한 그래프 하나가 해주는 것.

뇌 구조상 사람들은 자신이 읽은 것의 10%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직접 본 것은 30%나 기억한다. 언어나 숫자로 표현하는 것보다 적절한 도표(다이어그램)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 알기 쉽게, 직관적으로 전달해 주는 근본적인 이유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표를 사용한다. 롱테일 그래프를 고안해낸 앤더슨도 그렇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간단하게 그릴 수 있는 도표를 놔 두고 같은 말만 반복한다. 대다수가 도표가 효과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막상 그리려니 어려워서 그런 경우다. 글쓰기나 말하기는 자연스럽게 배우지만, 도표 그리기는 그 어디에서도 특별히 배울 기회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마케팅 전문가 케빈 던컨은 도표 사용을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가장 쓰기 쉬운 핵심 도표 10개를 뽑았다. 그리고 이 도표를 응용해 그릴 수 있는 도표들을 50개나 준비했다. 위에서 설명한 롱테일 그래프도 그 중 하나다. 벤 다이어그램부터 '매슬로(Maslow)의 욕구 단계론'에서 보던 피라미드 도표까지 우리가 알던 것도 많다.

던컨은 다양한 데이터를 하나의 간단한 표현이나 아이디어로 만들어 내야 하는 마케팅 전문가로 살다보니 도표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도표의 효율성에 주목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시각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백 마디 천 마디의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 머릿속에서 간단하게 도표나 차트 등을 그리고 얘기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사회는 갈수록 더 시각적으로 변하고 있다. 글보다는 사진, 사진보다는 영상을 원한다.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사고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도표는 언어를 넘어 통용되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소통 방식으로도 쓰일 만 하다. 시각적인 사고의 가치는 바로 이런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