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 무역위원회(ITC)가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삼성을 '카피캣(copycat·모방꾼)'으로 비방해온 애플이 도리어 삼성전자 기술을 베낀 카피캣으로 판정받은 것이다.

ITC는 4일(현지 시각) 웹사이트에 "애플 제품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표준특허(등록번호 348)를 침해했다"는 결정문을 올렸다. 미국 관세법 337조는 특허권을 침해한 제품의 미국 수입을 막고 있다. 이를 판단하는 전문기관이 바로 ITC다. ITC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특허전문 심판기관이다. ITC 결정은 미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아야 효력을 발휘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애플 제품 수입 금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이 ITC의 결정을 무시할 수도 있지만, 전례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작다.

이번 결정으로 애플이 입을 실질 피해는 생각보다 작다. 수입 금지 대상은 아이폰3G·아이폰3GS·아이폰4와 이동통신(3G) 기능이 있는 아이패드·아이패드2다. 애플이 이미 단종했거나 곧 단종할 예정인 제품이다. 또 이미 수입해 놓은 제품은 판정과 무관하게 판매할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5 같은 최신 제품은 삼성전자와 상호 특허사용 계약을 맺은 퀄컴에서 받은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특허 침해와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ITC는 이를 받아들였다. 물론 삼성전자는 퀄컴과 맺은 계약을 애플에도 적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가진 의미는 크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전 세계에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무기는 이른바 표준특허다. 표준특허는 말 그대로 모든 휴대전화기에 들어가는 기술이다. 애플은 표준특허를 쓰지 않으면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표준특허를 침해했다고 해서 제품 수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은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여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삼성은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한 상태다. 미국 최고 특허 전문 기관에서 내린 판결은 향후 캘리포니아 법원을 포함한 전 세계 법원이 내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