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의 아들이지만, 전문 경영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서 28년 만에 사장이 됐으니까요."

세계 10위의 재보험회사인 코리안리 차기 사장으로 내정된 원종규(55) 전무는 "사장이 된다고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겠지만, 회사는 많이 바꿔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14일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사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코리안리 지분 20%를 보유한 대주주 원혁희 회장의 셋째 아들인 그는 명지대를 나와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86년 코리안리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차장, 부장 등 한 직급도 건너뛰지 않고 모든 계단을 밟고 50대 중반에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금융권은 물론이고 국내 경제계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경우다. 해상보험 등 실무는 물론이고, 인사·재무·교육 등 회사 내 거의 전 업무 분야를 거쳤다. 1997년부터 5년간은 미국 뉴욕 주재 사무소에서 해외 영업도 경험했다. 그는 "오너 집안이라고 하지만, 차장 진급 때까지는 입사 동기들보다 승진에서 뒤졌다. 오히려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원종규 신임 코리안리 사장은“대주주의 아들이지만, 전문 경영인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에서도 그런 평가를 받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주주의 셋째 아들이지만, 지난 1986년 코리안리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서 28년 만에 사장이 됐다.

그는 "아버님이 그동안 제가 나이도 차지 않고,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건설업체인 대림산업 전무, 풍림산업 대표이사 등을 지낸 원혁희 회장은 90년대 후반 코리안리의 주식을 매입해 최대 주주가 됐다. 작년 말 기준으로 코리안리 지분은 원 회장 외에 외국인 40%, 기관투자 29% 등이다. 원 회장은 상근 회장(등기 임원)으로 근무하지만, 대표이사 사장(CEO)은 15년간 박종원(70) 현 사장에게 맡겨왔다.

코리안리 사장을 5연임하면서 보험업계 최장수 CEO 기록을 세운 박 사장은 오는 14일 퇴임식을 갖고, 2년 임기의 고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원종규 신임 사장은 "박 사장은 참 존경하는 분이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이끌 코리안리는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야성(野性)을 강조한 박 사장과 달리 전문성(專門性)을 앞세운다는 것이다. "인사 시스템을 개편, 3년마다 직원들의 보직을 교체하는 기존 순환보직제를 폐지할 생각입니다. 어떤 일이라도 맡기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은 내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성을 높이는 것은 코리안리의 세계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야성도 중요하지만, 전문성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솔직히 국내 재보험시장도 코리안리가 거의 독점적인 위치에 있어 국내 보험사들이 아쉬운 점이 있어도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는 코리안리의 최대 연례행사인 백두대간 종주도 중단된다. 그는 "백두대간 종주 대신 국내외에서 해비타트(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자원봉사)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 것으로 대체하겠다"고 말했다. 회사 울타리 내에서 '우리끼리'를 강조하는 것보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을 찾겠다고 했다.

장애인 고용 문제도 달라진다. 박 사장 재임 중에는 '코리안리는 정신력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강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일종의 벌금인 부담금을 정부에 납부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장애인도 코리안리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여건이 허용하는 한 장애인 고용을 늘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