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전쟁에 대비해 국내 기업들이 쌓아 놓는 특허의 등록·유지·보수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허 등록은 특허 관리의 시작에 불과하다. 특허를 받은 다음 특허 당국에 매년 특허 유지 비용을 내야 한다. 오래전 등록한 특허일수록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일종의 누진제다.

국내 최다 특허 보유 업체(국내외 10만3000건)인 삼성전자의 경우 작년 특허 등록·유지에만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특허 8만여건을 보유한 LG전자 관계자도 "정확한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특허 유지에 쓰는 돈이 매년 수백억원"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특허 등록·유지에 매년 300억원 정도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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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뿐 아니라 기술력이 뛰어난 전문 기업도 특허 유지에 큰 투자를 한다. 세계 5위 LED(Light Emitting Diode·발광다이오드) 생산 업체인 서울반도체는 작년 특허 등록·유지비로 200억원을 썼다고 밝혔다. 서울반도체는 특허에 강한 기업이다. 국제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는 국내외 특허 1만건을 보유한 서울반도체의 특허 경쟁력을 전 세계 반도체 업체 가운데 10위로 평가했다. 같은 평가에서 미국 인텔은 11위였다.

특허 유지에 이렇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이유는 출원·등록에 법무 비용이 들고, 특허를 유지하는 대가로 매년 일정한 금액을 각국 등록 기관에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무 비용을 포함한 특허 출원·등록 비용은 국내에선 건당 300만원 선, 미국이나 유럽은 2500만∼3000만원 선이다.

등록 이후 국내는 특허청에서 매년 연차등록료를 받는다. 특허 유지비에 해당하는 돈이다. 최초 등록 후 3년까지는 건당 매년 1만5000원을 내야 한다. 이후에는 보유 기간에 따라 4∼6년차에 매년 4만원, 7∼9년차에 매년 10만원 등으로 늘어난다. 13∼20년차에는 매년 36만원을 내야 한다.

여기에 특허가 보장하는 기술·권리의 세부 항목인 '청구항'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추가 금액을 낸다. 등록료를 내지 않으면 특허는 소멸된다. 특허청은 "등록료는 시간이 갈수록 비싸지는 누진제적 성격이 있다"며 "한 기업이나 개인이 특허를 지나치게 오래 보유해서 기술 확산을 막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특허도 선택과 집중 필요

특허 등록·유지 비용이 급증하자 기업들은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기 위한 '특허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특허를 무조건 많이 보유하기보다는 핵심 특허를 보호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가령 영상기기 시장의 핵심 제품이 비디오에서 DVD로 변했다면 이제는 쓸모없게 된 비디오 관련 특허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보유 특허의 가치를 매년 재검토해 옥석을 가린다. 삼성전자·LG전자 같은 대기업에서도 "특허는 이제 양보다 질(質)"이라는 말이 나온다.

과거 국내 전자업체들은 연구원에게 1인당 특허 목표량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몰아붙였다. SK하이닉스는 "10년 전에는 연구원 1인당 연간 1개 이상 특허를 출원하도록 강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이제 연구원들에게 특허 출원을 강요하지 않는다.

특허 출원 국가 숫자도 줄여가는 추세다. 하이닉스는 과거 일본·유럽·미국 등 주요 국가 전체에서 특허를 받았지만 최근 들어선 해외 특허를 출원할 때 미국 위주로 신청한다. 특허 분쟁이 주로 미국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이 밖에도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특허 유지비 절약에 나서고 있다. 팬택 양율모 상무는 "사용하지 않는 특허를 매각하거나, 공증 기관에 신탁을 맡겨 다른 회사에서 일정 비용을 내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을 사용한다"며 "버릴 수 없는 특허의 경우 청구항의 수를 줄여 비용을 절약한다"고 말했다.

특허 유지비를 손익계산서상의 비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기술 투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중소기업이나 연구기관 등에서는 특허 등록료가 지나치게 비싸 부담스럽다는 하소연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를 비용으로 볼 것인지 투자로 볼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