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전 세계 자동차 업계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전기차 업체 테슬라(Tesla) 실적 발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1~3월) 순익 1100만달러(120억원), 매출은 지난 분기보다 83% 오른 5억6200만달러(63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역사상 첫 흑자였다.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던 전기차에 대한 시장 반응이 냉담했던 것을 감안하면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흑자 전환 공신은 지난해 6월 내놓은 '모델S'였다. 기본형의 가격은 6만9900달러(7800만원). 올 1분기 판매량은 4900대로, GM 볼트·닛산 리프 등 기존 전기차 실적을 앞섰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에 이은 럭셔리 차 3위에 올랐다.

올 1분기 역사상 최초로 흑자를 낸 미국 테슬라의 전기차.(왼쪽) /올 하반기 전 세계에 선보일 전기차 BMW i3. 침체해 있던 전기차 시장의 분위기를 뒤바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차체에 적용해서 기존 차량보다 무게를 크게 줄인 것이 특징이다.

이뿐 아니다. 올 하반기 BMW·폴크스바겐 등 독일 업체와 GM·르노 등에 의해 성능을 대폭 개선한 전기차가 연이어 쏟아져 나온다. 죽은 줄 알았던 전기차 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경쟁력을 회복하고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BMW 등의 대공세

미국 포드의 전기차 '포커스 일렉트릭'의 경우 재작년 12월 출시 이후 두 달간 단 10대만 팔리는 수모를 겪을 정도로 1세대 전기차는 대실패였다. 외관은 기존 차와 비슷해 보이는데, 성능(한 번 충전에 100㎞ 남짓)은 부족했다. 하지만 독일 차를 중심으로 2세대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업계에서는 테슬라에 이어 BMW를 전기차 시장에 불을 지를 유력 후보로 놓는다. 이 회사는 올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직후 BMW i3를 판매할 예정이다.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에 4억 유로(586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전용 생산 라인을 만들었고, 다른 두 곳의 공장에는 2억 유로(2930억원)를 들여 관련 부품 생산 설비를 도입했다. 한국을 전기차 보급 주요 거점 지역으로 놓고 국내엔 내년 초 선보일 예정. 지난 14일엔 서울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을 초청해서 전기차 발전토론회를 열었다. 수입차 업체가 대규모 토론회를 연 것부터 이례적이다.

BMW i3는 설계부터 전기차 전용 모델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전기차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전기차는 기존 모델에다 엔진 대신 리튬이온 배터리를 얹힌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미래형 차라는 느낌이 나서 국내 도로에 이 차량이 돌아다니면 눈에 팍 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공개한 내역을 보면 한 번 충전에 160㎞를 달린다. 한국에서 가격은 6000만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감안하면 소비자는 4000만원 후반대에서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골프 e블루모션' 등 2015년까지 20여종에 달하는 전기차를 각국에 출시할 예정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충전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인 아우디 'A3 e-Tron' 등도 국내 시장 출시를 대기 중이다. 미국 GM의 스파크는 다음 달 미국을 시작으로 올해 안 한국 시장에도 선보인다.

시장에서는 전기차 시장 분위기가 짧은 시간에 반전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2015년까지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30g/㎞으로 감축할 것을 규정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했다. 업체마다 좀 더 많은 전기차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시장에 등장했을 때, 스티브 잡스는 시장점유율 1%를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불과 1~2년에 바뀌어 휴대폰의 대세를 스마트폰으로 뒤집어 놓았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이러한 역할을 할 전기차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LG경제연구원 신장환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시장이 의외로 빨리 열린다면 준비가 부족한 자동차 기업은 당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 시장 활성화도 중요

전기차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시장에도 내년쯤이면 기존 기아차 레이를 비롯, BMW i3, GM 스파크, 르노 SM3전기차 등 4~5종이 돌아다닐 예정이다. 하지만 휴게소 등에 설치할 급속충전기 방식을 둘러싸고 현대기아차와 BMW 등 글로벌 업체의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는 등 인프라 확충 작업이 더디다. 전기차 대신 수소차 개발에 열을 올리는 현대차에서 전기차 보급에 미온적이란 평가도 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전기차 시장에선 국산차와 수입차 대결 구도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전기차 원가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리튬이온 2차 전지는 대부분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한국 업체가 만들고 있다. BMW와 폴크스바겐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2차 전지는 삼성SDI가 공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