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 위기는 일시적이고 단순한 위기였지만 지금은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위기 상황입니다. IMF 위기를 잘 넘겼던 창원 공단이 지금은 STX조선해양 문제까지 겹쳐 상당수 회사들이 부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최충경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통상임금에 대해 변화된 결정이 없으면 한국에서 계속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수도권의 한 상공회의소 회장)

71명의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들이 22일 광주광역시 농성2동 광주상공회의소에 모여 현장에서 겪고 있는 경제 위기 실체를 토로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모임에 앞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도 회장단의 70%가 "현재 경제 상황이 IMF 외환 위기 수준이거나 그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전국 14만명 상공인들을 대표하는 이들은 이날 "대체휴일제 도입, 비정규직·사내하도급 규제 강화, 근로시간의 급격한 단축 등 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입법은 자제해야 한다. 과도한 노동·환경 규제로 기업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각종 경제 민주화 입법을 진행하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포문을 연 것이다.

"경제 민주화 입법이 투자에 가장 큰 부담"

호남 지역의 한 상공회의소 회장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제발 경제 상황을 감안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기를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다. 일단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니냐"고도 했다.

각종 경제 민주화 입법이 경제 현장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서도 회장단은 경제 민주화 입법화(38.2%)와 노동 규제 강화(38.2%)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준다고 답했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내부거래 규제 등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 동향에 대해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는 의견(76.1%)이 많았다.

"엔저로 인한 피해 심각"

엔저로 인해 중소기업이 받는 타격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충경 창원상의 회장은 "창원 공단에 있는 철강이나 자동차 부품 회사들도 엔저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정부가 강 건너 불구경 할 때가 아니라 환율 정책에 개입해 원저(低)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상공회의소 회장도 "엔저 때문에 수출 물량이 계속 끊기고 있다"며 "우리도 일본과 같이 통화량을 늘려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들의 피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안산에서 자동차·전자 부품용 금형을 생산해 유럽과 일본에 수출하는 건우정공 박순황 대표는 요즘 엔저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일본 금형업체들이 지난달부터 금형 가격을 공격적으로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건우정공이 BMW 등 유럽 자동차업체에 수출하는 계기판용 금형 가격은 20만달러 안팎. 작년 초까지만 해도 일본 업체 금형 가격이 건우정공보다 약간 비쌌지만, 지금은 일본산 금형 가격이 건우정공보다 10% 이상 싸다. 박 대표는 "국내에 금형업체가 4000여개인데, 엔저 현상이 장기화하면 상당수 금형업체들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전국 상의 회장들의 58%가 우리 경제의 하반기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엔저 지속'을 꼽았다.

"통상임금 문제는 중소기업에도 직격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야근·휴일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면 기업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작년 3월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후 노조들이 줄줄이 소송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상공회의소 회장은 "우리 회사 직원들도 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통상임금 문제는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에는 쥐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 기업들이 일시에 부담해야 하는 추가 비용은 최소 38조5509억원. 특히 대기업보다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한꺼번에 14조4000억원을 부담해야 해 줄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년 발생하는 추가 비용(3조4246억원) 부담도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설문조사에서 회장단의 76.5%는 "통상임금 문제가 현재대로 가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