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일부 공동주택에서 공시가격이 시세를 초과하는 '역전(逆轉)'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은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기 때문에 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이 일정치 않은 것은 과세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현재 아파트 공시가격은 시세를 평균 71% 반영하고 있다.

14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인천 서구 가정동 진흥2단지 전용 79㎡ 아파트는 5월 초 기준 매매가가 7000만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3년 전 1억5000만원에서 절반 이상 폭락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이 아파트 공시가격은 8400만원이었다.

경기 고양 대화동 아이파크 146㎡ 아파트도 마찬가지. 공시가격은 4억4000만원인데, 최근 실제 매매가는 최저 4억3000만원까지 내려갔다.

경기 고양 일산 산들마을3단지 대림아파트 142㎡는 2010년 4억5000만~5억3000만원에 거래됐으나 3억원까지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공시가격은 3억200만원으로 발표됐다. 서울 용산동5가 파크타워 150㎡도 급매물이 11억5000만원에 나와 있는데 공시가격은 단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13억원 안팎이었다.

반면 올해 공시가격이 54억4000만원으로 8년째 전국 1위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트라움하우스 5차 전용면적 273.6㎡ 아파트는 시세가 100억원이 넘는다.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50% 수준인 셈이다.

부동산114 자료는 아파트 값이 많이 떨어진 일부 가구만을 표본으로 파악한 것이다. 실제 공시가격 발표 대상인 1092만 가구를 모두 조사하면 시세 반영률이 불균등한 사례가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올해 국토부는 공시가격이 작년보다 4.1%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집값이 공시가격 하락률보다 더 많이 떨어졌는데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공시가격은 국토부가 한국감정원에 조사를 의뢰, 3개월 동안 부동산 거래 자료와 각종 정보 사이트 등을 참조해 산출한다. 국토부는 "공시가격을 산출하는 기초인 실거래가 자료가 많지 않다 보니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로 인해 문제가 되는 것은 세금이다. 집값은 싼 데 공시가격이 높으면 합당한 수준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이 4억4000만원인 경기 고양 대화동 아이파크 146㎡ 아파트의 경우, 다른 아파트처럼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70%대라면 재산세를 60만원가량 덜 내도 된다. 반면 서울 서초동 트라움하우스 5차 273.6㎡ 아파트는 시세 반영률이 70%로만 올라가도 재산세를 1000만원 더 내야 한다.

매년 국토부는 공동주택뿐 아니라 토지와 단독주택 공시가격 조사를 위해 1400억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공시가격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이의신청이 매년 수천 건에 이르는 실정이다. 지난 9일 한국부동산분석학회 세미나에서는 "공시가격 형평성에 결함이 있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조세 수입이 감소하고 저소득층 조세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토부는 "부동산 정보업체가 조사한 실거래가는 실제와 다를 수 있다"면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이기 위해 조사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보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서민 입장에선 집값은 크게 떨어졌는데 내야 할 세금은 그다지 줄지 않는 '상대적 박탈감'을 겪기 때문에 공시가격 조사가 더 정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세무 당국이 과세 기준으로 삼는 가격으로, 일조권·방향·평형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가격을 매긴다. 원래는 국세청이 조사해 발표하다가 2006년 국토교통부가 넘겨 받았다. 땅에 대한 공시가격은 공시지가로 부르며, 주택 공시가격은 토지와 건물 가격을 합친 것이다.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과표(課標)로 사용하며, 보상가격이나 담보가격으로는 활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