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나리더 사장은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보기에 이 사업은 진행하기만 하면 두말할 것 없이 대박이다. 그런데 뜻밖에 사내(社內) 반대가 거셌다. 부하 직원들은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또 저래서 어렵다고 난색을 표한다. 나 사장은 '내가 CEO인데 우리 회사 사정을 나만큼 제대로 꿰뚫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나 사장의 멘토인 친구 박 사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가 CEO이기 때문에 오히려 못 보는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어. 그곳에 숨어, 볼 수 없는 정보까지도 다 확인해야 하네!" CEO가 못 보는 사각지대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해법

경영진은 누구보다 회사 사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고 자기 판단이 정확하다고 자부하겠지만, 그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놓친 정보는 경영진의 판단과 행동을 왜곡시켜 회사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경영진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①리더의 첫 번째 사각지대는 사업상의 '리스크'

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기업의 장밋빛 미래를 실현하는 데 온 관심을 집중하는 나머지, 그 뒤에 숨겨진 가시를 살피는 데 소홀하기 쉽다.

미국 브리검영대학 경영학과 캐티 릴젠퀴스트 교수는 고위 경영진을 포함한 직장인 230명에게 경영 목표 달성과 관련한 방해 요소와 도움 요소를 여러 개 보여줬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보게 했다. 그 결과 신기하게도 고위직일수록 경영 목표에 방해되는 요소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하위 직급과 비교했을 때 긍정적인 징후를 보여주는 요인을 방해 요소보다 더 많이 기억했고, 이를 중심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성향을 나타냈다. 사업의 리스크 요인이 리더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쪽으로 편중된 정보에만 의존하면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특히 경영진의 결정은 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는 더욱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②두 번째 사각지대는 '아랫사람 감정'

미국 코넬대 존슨 경영대학원에서는 향후 비즈니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될 덕목 중 하나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꼽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굿 보스 배드 보스'의 저자인 로버트 서튼 교수도 "높은 지위에 앉아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를 배려하는 능력이 부족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심리학자 저벤 A 반 클리프(Gerben A van kleef)의 실험에 따르면,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공감(共感)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이를 기록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두 명씩 짝을 지어, 상대방에게 자신이 겪었던 가장 괴롭고 힘들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했다. 동시에 심전도 검사를 통해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자신이 높은 권력과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상대의 고통과 괴로움에 덜 공감했다.

이처럼 상대방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고위직 리더는 아랫 사람을 함부로 대하기 쉽다. 그런 리더 밑에서 부하 직원들은 상처받고 괴로워하게 된다. 결국 이런 리더는 좋은 인재를 놓치거나, 나아가 조직 내 신뢰를 잃고 고립무원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③세 번째 사각지대는 바로 '자신의 정확한 모습'

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늘 누군가를 평가하고 관찰하기 바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해줄 윗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자기 인식(self awareness)의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

하지만 리더가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헤이그룹이 기업 리더 1만3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기 인식 수준이 높은 리더의 92%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최대 30%의 성과를 더 이끌어낸다고 한다. 좋은 성과를 위해서라도 리더에게 제대로 된 자기 인식은 필수인 셈이다. 따라서 자신의 강점이나 약점은 물론, 자신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상기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그 비전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등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성찰은 리더의 생각과 비전을 더 확고하게 만들고, 그럴 때 조직은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갖게 된다.

미국의 전설적인 경영자였던 GE의 잭 웰치는 회사 사정을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CEO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도 그랬다고 토로했다. 나무가 크고 높이 자랄수록 그 그림자는 커진다. 마찬가지로 직급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갖게 된다. 회사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사각지대로 발을 들여놓고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