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자유예금(수시입출금식 예금) 계좌로 판매 대금을 관리하고 있는 A중소기업 김모(50) 사장은 지난달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예금을 해약하러 은행에 갔더니, 잔고가 5000만원이나 남아있었지만 은행에서는 이자를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수시로 매매대금을 넣고 빼긴 했어도 5000만원에 대한 이자가 '0원'이라는 사실을 김 사장은 납득할 수 없었다.

은행원의 설명은 이랬다. 김 사장은 지난 3월 물품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기업자유예금 계좌에 있던 3000여만원 전액을 찾아 잔액이 0원이 됐다. 이후 지난달 1일 5000만원을 넣고 다음 날인 2일 추가로 5000만원을 입금했다. 그리고 5일 5000만원을 인출했다. 8일에는 통장에 5000만원이 남아있었다. 김 사장은 지난달 8일 은행을 찾았는데, 은행원은 예치 기간이 7일 미만인 예금엔 이자를 안 주는 '7일간 무이자' 제도와 예금을 인출할 땐 먼저 들어온 돈부터 뺀다는 '선입선출(先入先出)' 방식을 적용하면 이자가 제로(0)라고 설명했다.

이 은행원은 "선입선출법에 따라 4월 5일에 인출된 자금은 1일 예치한 돈을 뺀 것"이라며 "통장에 남아있는 5000만원은 2일에 입금한 5000만원이고, 아직 예금한 지 7일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자가 없다"고 말했다. A사장은 "개인 자유예금은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주는데 이런 이상한 이자계산법은 처음 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기업자유예금에 대해 '7일간 무이자' 방식을 적용해 이자를 덜 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5일 밝혔다.

금감원의 1차 조사 결과, 농협 '알짜배기기업예금', 외환은행 '예스골드점프예금', KB국민은행 'KB우대기업자유예금' 등 국책·시중·지방은행들이 판매 중인 기업자유예금들이 모두 이런 이자 계산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은행의 경우 5000만원 미만의 예금액에 대해선 예치기간에 상관없이 '무이자'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7일간 무이자 제도는 1980년대 금리 자유화 조치 이후 2003년까지 있었던 제도로, 기업의 여유 자금을 은행에 오랫동안 묶어두기 위해 기업자유예금에 상대적인 고금리 이자를 지급하는 대신 7일 미만의 예치금에 대해선 무이자를 적용하기로 한국은행이 규정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후 시장금리 하락세에 따라 은행들이 기업자유예금 금리도 계속 내렸고, 한은은 2003년 '7일간 무이자' 제도를 폐지했지만, 은행들은 이를 무시한 채 이 제도를 유지해왔다.

금융감독당국은 이 문제를 방치해 오다 최근 소비자 민원이 접수되자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예금이자율이나 구체적인 계산 방법 등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지만, 보통예금, 가계저축예금 등 다른 수시입출금식 예금에 비해 기업자유예금의 이자 지급 방식이 현저히 불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 개인·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시입출금식 예금 금리 자체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은행들의 수시입출금식 예금 금리는 0.99%였다. 수시입출금식 예금 잔액은 총 332조7000억원으로, 전체 은행 예금의 3분의 1 정도다. 금감원은 대다수 고객이 수시입출금식 계좌 금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은행들이 금리를 담합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