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초일류 기업들이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GE·바스프·지멘스 등이 한국이 제조업 분야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술 경쟁력과 양질의 인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지역 본부나 R&D(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겠다고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GE는 글로벌 본부 설립 이어 생산설비 이전도 검토

세계적 화학기업인 독일 바스프(BASF)는 지난 3월 홍콩에 있는 전자소재 부문의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를 한국으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바스프는 또 아·태 지역 R&D센터를 연내에 한국에 설립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를 저울질하고 있다.

바스프는 막판까지 R&D센터 설립지로 한국과 일본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일본의 뛰어난 R&D 인프라 대신 한국의 잠재력을 더 높이 평가해 한국을 낙점했다. 업계 관계자는 "바스프가 이르면 오는 8월쯤 수도권 지역에 50명 안팎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R&D센터를 설립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바스프가 아·태 본부 이전에 이어 R&D센터까지 설립하면 한국이 바스프 전자소재 부문의 '글로벌 중심'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신우성 한국바스프 회장은 "바스프 본사가 아·태 지역의 전자소재 R&D센터 입지로 한국을 최종 결정한 것은 삼성전자·LG전자 등 세계적 기업을 보유한 한국 전자산업의 경쟁력과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GE는 지난주 새로운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는 조선·해양 부문의 글로벌 본부를 한국에 설립한다고 밝혔다. GE는 글로벌 본사 설립에 이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생산 시설과 R&D·마케팅 관련 조직도 한국으로 옮길 예정이다. 1일엔 안승범 전 로열더치쉘코리아 회장을 조선·해양 부문 글로벌 사장으로 선임했다.

GE가 미국 이외 지역에 글로벌 본부를 두는 것은 2011년 호주의 광산 사업 본부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다. 조선·해양 부문 본사를 한국에 설립하는 것은 한국에 세계 3대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세워지는 본부는 석유·가스, 항공, 수송 등 각 사업군에 흩어져 있는 조선·해양 관련 부문을 통합, 지휘하게 된다. 강성욱 GE코리아 사장은 "해양 구조물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력이 후발국에 비해 5~7년 앞서 있다"면서 "한국의 조선 '빅3'와 굳건한 협력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계적 전기·전자기업인 독일 지멘스도 발전 엔지니어링 부문의 아·태 지역본부를 한국에 설립한다는 사실을 다음 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기술 경쟁력·인적 자원이 한 몫"

HP·오라클 등 IT 기업이 한국에 R&D센터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한국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는 소규모 연구소가 대부분이었다. 화학·전기·중공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세계 1위를 다투는 기업이 한국에 본부나 R&D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이 다국적 기업 유치에 성공한 배경에는 한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GE는 조선·해양 본부 설립지를 놓고 대규모 시장과 자원을 보유한 중국·브라질, 우수한 투자 인프라를 갖춘 싱가포르를 후보지로 검토했지만, 최고의 조선 기술력을 가진 한국이 최적지라고 판단했다.

한국이 우수한 인적 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글로벌 기업에 매력적인 요소다. 신우성 한국바스프 회장은 "한국은 시장이 좁고 자원이 없지만 사람이 있다"면서 "고도의 기술과 기술에 대한 보호가 필요한 분야에서 한국의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글로벌 기업의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투자액의 최대 10%를 되돌려 주는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글로벌 기업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일본도 지난해 8월 '아시아 거점화 촉진법'을 공포하면서 대대적인 글로벌 기업 유치에 나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