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이 도덕적인가. 선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나. 오히려 논쟁적인 인물이 많다.

애플컴퓨터로 PC 시대를 열고 아이폰을 탄생시켜 스스로 PC 시대를 마감시킨 스티브 잡스도 그렇다. 잡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 사랑하는 일을 찾아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자선엔 인색했고 젊은 시절엔 인생에 방해된다며 자신이 낳을 딸도 나몰라라 했다.

일러스트=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서두가 길었다. 러시아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시정(市政) 혁신 대명사가 된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그도 찬사와 비판을 한 몸에 받는다. 정보기술(IT)을 도시 행정 혁신에 이만큼 적용시킨 인물도 드물지만, 그가 설계한 도시의 그림자도 봐야 한다. 억만장자 3선 뉴욕 시장의 자산은 270억 달러. 2013년 3월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13번째 부자다.

뉴욕시 전경


◆ 칠순 앞두고 컴퓨터 언어를 배우자는 사나이

"My New Year's resolution is to learn to code with Codecademy in 2012! Join me (제 새해 소망은 코드카데미에서 코드-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함께 해요)."

2012년 1월 5일. @MikeBloomberg가 날린 트위터 메시지에 전 세계 IT 종사자들이 열광했다. 1942년생. 만 70세를 꼭 1년 앞둔 시점이었다. 그의 한 마디는 혁신에 대한 새로운 정의였다. 정보화 시대에 관리자도 CEO도 어린 아이도 마치 글을 깨치듯 코드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메시지는 또 '희망'이었다. 세계 2차 대전 와중에 탄생한 사람이 코드를 익힌다는데 우리도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데 늦지 않았다는 작은 용기를 북돋아 준다. 블룸버그의 새해 다짐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도 응원 메시지를 보탰다. "코딩은 정말 멋진 일이며 내 커리어의 전부였다."

블룸버그는 미국 혁신의 심장 '실리콘밸리'를 사랑하고 또 부러워한다. 최근 실리콘밸리 화두는 이민법 개혁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를 비롯한 주요 CEO들은 외국인 기술자들이 미국에 남을 수 있도록 비자 규정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동부에서 태어나 동부의 중심인 뉴욕의 수장이 된 블룸버그도 이민법 개혁에 동참했다. 블룸버그가 창설한 조직인 '새로운 미국 경제를 위한 파트너십'은 온오프라인으로 이민법 개혁을 부르짓고 있다.

이뿐인가. 블룸버그는 올 2월에 '뉴욕에서 만들었다(We are made in NY)'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뉴욕시를 동부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는 야심한 구상이었다.

"뉴욕시도 콜롬비아대를 비롯한 우수 대학이 많다. 더 우수한 공과대학을 끌어들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하겠다."

◆ 유모 국가부터 빅브라더 논란까지

2008년 블룸버그는 깜작 기자회견을 열었다. 내용은 '전 세계 담배와의 전쟁 선포'. 블룸버그는 개인 자산 2억5000만 달러를 털고 빌 게이츠 재단이 2억 5000만 달러를 보태 5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금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필립 모리스 등 담배회사들은 바로 소송을 제기했고 블룸버그 측은 패소했다.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블룸버그는 뉴욕시 공공 주택 금연 법안을 만들어 응수했다. 담뱃갑도 대폭 올렸다. 뉴욕 시민의 흡연율은 2000년대 초 20% 대에서 현재 10%대로 떨어졌다. 의기양양한 블룸버그는 '비만과의 전쟁' '소금과의 전쟁' '총기와의 전쟁'까지 주도하고 있다. 뉴욕 시민들은 내리 3연속 그를 시장으로 당선시키며 12년째 뉴욕을 그의 손에 맡기고 있다.

블룸버그의 초강력 규제에 대해 '유모 국가(nanny state)'라는 비아냥도 적지 않다. 정부가 마치 유모가 아이를 돌보듯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고 통제한다는 얘기다. '유모' 블룸버그는 비판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술 더 뜬다.

뉴욕市의 최신 범죄감시시스템 'das'

지난달 22일(현지시각) 뉴욕시가 더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다면서 하늘에 무인기까지 띄워 도심 구석구석을 살피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이미 뉴욕시 맨하튼에만 2400개 감시카메라가 작동 중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계속 치안을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수많은 카메라가 놓치는 사각지대까지 무인기를 통해 속속 들여야 보겠다는 것이 뉴욕시의 계획이다.

뉴요커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곳이 전쟁이 일어났던 아프가니스탄이냐”는 것이다. 모든 정보를 손에 쥔 ‘빅 브라더(Big Brother 거대 권력자)’ 세상이 도래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거세다.

아닌게 아니라 블룸버그가 12년 이끌어 온 뉴욕시의 감시와 데이터 분석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폐유(廢油)를 무단 투척한 식당 하나쯤을 골라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가령, 전체 식당이 방출하는 폐유 규모, 해당 지역에서 나온 폐유 규모를 비교해보면, 데이터가 누락된 식당을 추적해 벌금형을 때릴 수 있다.

뉴욕시 정책 및 전략계획실(Office of Policy and Strategic Planning)은 하루 1테라바이트, 종이로 따지면 1억4300만 페이지에 해당하는 엄청난 정보를 수집, 분석한다. 보일러나 스프링쿨러 시스템이 내보내는 데이터부터 뉴욕 시민의 심장마비 횟수와 출퇴근 경로, 학생들의 시험 성적에서 자가용 운전자의 주차 구역과 주차 시간까지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한다. 뉴욕시 전략계획실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담 후세인을 막판까지 추적한 정보 분석 요원들도 근무한다.

▲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 "해고는 억만장자가 되는 절호의 기회였다"

1981년, 당시 나이 39세인 블룸버그에게 느닷없이 날라온 해고장. 퇴직금 1000만 달러를 줄 테니 나가달라는 회사의 요청이었다. 채권 전문회사 살로먼 브러더스에서 승승장구해 파트너로 일할 때였다. 배신감은 곧 창업 의지로 바뀌었다. 블룸버그가 퇴직금으로 만든 회사가 이름도 거창한 '혁신시장 시스템(Innovative Market Systems)'이었다.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금융정보업체 블룸버그의 전신이다.

그의 창업 동지는 기술전문가였다. 블룸버그는 존스 홉킨스대 전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DNA와 퇴사 전 전산시스템 개발팀을 관리했던 경험을 십분 발휘해 실시간으로 금융 정보를 제공하는 단말기를 개발했다.

경제지를 뒤적거리며 매매 정보를 찾던 월가 트레이더들은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수익을 얻기 위해 블룸버그 단말기를 잇따라 사들였다. 단말기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블룸버그는 이제 통신, 라디오, TV까지 거느린 종합 미디어그룹이 됐다. 블룸버그는 이 회사 지분 85%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자랑하는 ‘기부 거인’이 됐다. 시골뜨기에 불과했던 자신을 키워준 모교 존스홉킨스대에는 지금까지 1조원 넘게 기부했다. 미국 대학 기부 사상 개인이 낸 규모로는 최대 기록이다.

2007년 뉴욕포스트는 흥미로운 분석 기사 하나를 실었다. 얼마나 흠잡을 것이 없었으면 작지도 않은 키를 물고 늘어지며 그를 유머스럽게 묘사했다.

“그는 절대 대통령은 되지 못할 것이다. TV시대의 대통령들은 모두 키가 크다. 조지 W. 부시는 정확히 6피트(183cm)다. 리차드 닉슨도 존 F.케네디도 마찬가지다. 로날드 레이건은 6피트 1인치(185.5cm), 아버지 부시와 빌 클린턴은 6피트 2인치(188cm)이고 린든 존슨은 6피트 3.5인치(192cm)나 된다. 블룸버그는 5피트(171cm) 밖에 안된다. 지미 카터가 유일하게 5피트9인치(176cm)였는데, 재임중 어떤 일을 당했는지 생각해보라.”

이제 뉴욕시는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마이너 리포트’가 그린 사회를 꼭 빼닮았다. 영화 속 프라이크라임 팀장은 사람들의 대화, 이력, 동선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범죄 예측 시스템으로 범행이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인까지 사전에 감지한다. 뉴욕시도 엄청난 부와 첨단 기술 앞세운 블룸버그 시장의 12년 개혁 덕분에 영화처럼 범죄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5년 내 뉴욕시 모든 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시대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건물에 감시 카메라가 있는 것이나 하늘에 감시 카메라가 있는 것이나 무엇이 다릅니까?”

빅 브라더 논란에 대한 블룸버그의 반문이다.  왜 그가 당당한가. 올해 블룸버그가 날린 첫 트위터 메시지를 보라.

@MikeBloomberg 1월 2일
"2012 was a historic year in public safety with record lows in homicides, shootings, and fire deaths.(지난해 뉴욕시는 암살, 총격, 화재 사망자 등이 최저치를 기록한 공공 안전에 관한 역사적인 한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