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 SK텔레콤(017670)과 같은 IT기업은 물론 금융회사들까지 나서 기업들이 잇따라 ‘웹 접근성 인증마크’를 받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차법)’이 이달 11일 국내 모든 법인을 대상으로 확대되면서 장애인들이 웹사이트에서 정보 수집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물론 장차법 적용대상이 되는 기관과 기업이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의 벌금에 처해진다.

인터넷 사이트가 장애인들이 사용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만들어졌는지를 심사한 뒤 이를 잘 준수한 기업에게 주는 웹 접근성 인증마크는 기업에겐 심정적인 보험인 셈이다.

공공기관과 통신사, 금융사 등 일반 소비자가 자주 방문하는 기업과 기관들은 지난해와 올해 홈페이지를 개편한데 이어 인증마크를 받는 등 웹 접근성 향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기업간 거래(B2B)가 업무의 주를 이루는 제조사나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은 어디서부터 준비를 해야할 지 막막한 실정이다.

전기 부품을 주로 만드는 한 대기업 계열사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올린 제품설명은 대부분 음성이나 수화 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전자와 전기 관련 전문용어들로 이뤄졌다”며 “웹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력 제품이 주로 IT회사나 전기 관련 업체에 공급되고 있어 비장애인 방문객도 적은 상황에서 어디까지 개선해야 할지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중소기업이나 중소 쇼핑몰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대형 쇼핑몰처럼 하루 방문자 수와 개선해야할 페이지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대기업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인증까지 받지만 중소 규모의 법인들은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민은식 씽크유저 책임연구원은 “2009년부터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들조차도 예산을 들여 웹 접근성을 개선했지만 막상 돈과 시간에 쫓겨 생색내기에만 그친 경우가 많다”며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 외에도 콘텐츠 업데이트가 비장애인이 보는 수준으로 잘 돼야 하는데 거의 지켜지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웹 접근성 인증마크를 받아도 정보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비장애인과 차별받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얼마든지 법정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NIA)과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 운영하는 웹와치, 웹 접근성 평가센터 등 공공·민간 발급기관들은 국가 표준 지침에 따라 22개 검사항목을 통과한 기업을 심사해 품질마크나 인증마크를 발급하고 있다. 정교한 평가를 위해 검사항목 외에도 40개가 넘는 세부 체크리스트도 활용한다.

하지만 국가 표준 지침을 바탕으로 한 검사 항목만으로는 장애인의 웹 접근성을 향상하는데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훈 웹와치 팀장은 “장애인에 따라 동영상만해도 자막과 수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돼야 하지만 국내에는 하나만 선택하면 되는 등 몇 가지 허점이 있다”며 “이 때문에 차별적이란 평가를 받을 경우 법정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런 법정 분쟁이 막대한 소송비나 벌금에 그치지 않고 행여 ‘브랜드’나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일부에선 직접적 피해자인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준비되지 않은 기업을 노리고 문제 제기를 할 경우 속수무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미 시장에서는 기업들의 이런 불안감을 노린 웹에이전시 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실제로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의 검색광고에는 웹 접근성을 전문으로 한다는 에이전시가 50개 넘게 나타난다. 검색 광고를 하지 않은 소규모 에이전시까지 합치면 수백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대부분 ‘빠른 구축’‘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기업 고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웹 접근성 평가 기관 관계자들은 지난 한해에만 국내 기관과 기업들이 최소 수천억원을 웹 접근성 향상에 투자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까지 웹 접근성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금융사를 비롯해 대형 쇼핑몰, 중소기업들은 아직까지 웹에이전시에게 남아 있는 텃밭이다.

전문가들은 에이전시 선정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인증기관 관계자는 “웹 접근성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분야는 절대 아니며 어떻게 웹 접근성 기본 원칙과 규정을 지킬지 마인드의 문제”라며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또 다른 인증기관 관계자는 “B2B와 중소기업의 경우 장애인 거래자가 비장애인과 차별받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면 사업 목적에 한해 필요하다면 별도 페이지를 만들거나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