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가운을 벗고 나니 병원을 찾아가도 잡상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죠. 시간을 내주지 않는 의사를 만나려고 진찰권을 끊고 들어간 적도 여러 번입니다."

메디포스트 양윤선(梁允瑄·49) 대표는 2000년 삼성서울병원을 나와 제대혈(臍帶血·탯줄혈액)을 보관하고 나중에 병에 걸리면 여기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골수처럼 몸에 이식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의사들 사이에 제대혈 줄기세포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분만 과정에서 탯줄은 의료 폐기물로 버려졌다. 그는 창업 후 6개월간 전국의 산부인과 의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진찰 대기실 산모들에게 제대혈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메디포스트 본사 지하의 제대혈 보관 탱크들. 양윤선 대표는 “2020년까지 제대혈 줄기세포 치료제 3종을 세계 시장에 출시해 줄기세포 분야 세계 1위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의사들은 양 대표 말에 귀를 기울였다. 출신(의사) 덕을 많이 본 것. 메디포스트는 이후 국내에 제대혈 붐을 일으켰다. 현재 국내 시장의 41%를 차지하는 1위 업체다. 창업 초기부터 치료제 연구·개발(R&D)에 들어가 10여년 만인 지난해 연골 재생 치료제 '카티스템'의 허가를 받았다. 다른 사람의 제대혈로 만든 동종(同種) 줄기세포 치료제로는 세계 첫 승인이었다. 카티스템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에서 임상시험을 하고 있으며 최근 홍콩, 호주 회사와도 수출 계약을 맺었다.

"제대혈 보관사업은 기술 장벽이 낮아 누구나 덤빌 수 있어요. 그러나 치료제를 연구하는 회사는 쉽게 따라올 수 없죠." 2010년 서울에서 열린 '기업가정신' 국제콘퍼런스에서 창조경영 대가인 미국 와튼스쿨의 라피 아밋 교수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정신이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라며 "한국 기업 중에서는 메디포스트가 대표적이고, 미국 애플사와 견줄 만하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 전문의 자격시험 수석에 성균관대 의대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개원 멤버라는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 이식이 절실한데 기증자가 없어 죽어가는 모습을 수없이 봤어요. 대안으로 제대혈 줄기세포 은행을 시작했죠. 많은 환자에게 혜택을 주고 싶어도 비영리 법인인 병원에서는 사업을 확대하기 어려웠어요."

양 대표는 "육사 교수이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군인들과 어울려 새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며 "안정된 자리를 소중히 여겼다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도전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이던 남편도 그런 성격을 알기에 만류하지 않았다. 은사와 동료는 투자자로 참여했다.

겁 없이 창업을 했지만 제대혈 줄기세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주 한두 컵 정도의 탯줄혈액에서 줄기세포는 겨우 10개 남짓이었다. 이를 배양해 수천~수만개로 늘려야 이식을 하든 치료제를 만들든 할 텐데 교과서대로 해도 도대체 되질 않았다. 양 대표는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했다. 연구원들은 2년간 세포가 자라는 데 관여하는 모든 조건을 조합해보는 실험을 한 끝에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최적의 배양 조건을 찾아냈다.

"확률상 안 될 때가 있으면 잘 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연구를 하다 보니 제대혈 줄기세포가 면역세포를 피해 다른 사람에게 이식해도 거부 반응이 없다는 예상 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치료를 할 세포로 분화시키지 않아도 줄기세포 자체가 분비하는 물질만으로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모든 게 약품 개발에 큰 장점이 됐다. "줄기세포 치료제도 기존 약품처럼 규격화와 양산(量産)이 가능해진 것이죠."

메디포스트는 2020년까지 제대혈 줄기세포 치료제 3개를 출시하고 6개 이상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줄기세포로는 처음 시도되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등 치료제 3종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직원 156명 중 연구 인력이 60명이나 되고 매출의 30% 이상을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다. 그의 목표는?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