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최지웅 연결지성센터 연구원

‘슈퍼 모델 외모에 컴퓨터 달인(supergeek with the supermodel look)’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과장이 아니다. 실리콘밸리 엄친딸을 꼽는다면 유력한 1위 후보다. 구글이 뽑은 첫 여성 엔지니어이자 20번째 직원(현재 구글 직원 수는 미국에서만 5만 3000여명). 한때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와 사귄 것으로 알려졌으며 스톡옵션으로 백만장자 대열에도 합류했다. 금빛 머리칼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도드라진 마리사 메이어(Marissa Mayer) 야후 CEO(37).

2012년 7월 야후는 스탠퍼드대 졸업 후 줄곧 구글에서만 일해온 메이어(당시 구글 부사장)를 새 CEO로 깜짝 영입했다. 당시 그는 임신 중이었다. 야후는 1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의 대명사였지만, 이젠 CEO의 무덤이다. 지난 5년 동안 CEO가 6번이나 바뀌었다. 메이어는 서른 일곱 젊은 나이에 침몰하는 배 수장으로 겁 없이 올라탔다. 그리고 출산 2주 만에 사무실에 출근해 주위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아니, 여성 인권 운동가의 거센 항의를 받을 정도다.

◆ '구글의 잡스'에서 '야후의 독종'으로

"야후 CEO 제의를 받았을 때 고민했었지요. 구글에 다니는 것이 만족스러웠고 6개월 출산 휴가도 계획 중이었지요. 그런데 야후 CEO라니? 스스로도 임신 28주차에 미친 결정은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야후는 인터넷이 무엇인지를 최초로 정의한 곳이 아닌가. 구글 창업하는 데 도움도 줬고. 이런 점을 떠올리니,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더군요."

메이어가 구글에 재직한 기간은 13년. 엔지니어, 디자이너, 상품 기획자로 두루 일했다. 구글 검색, 지메일, 구글 뉴스, 구글 맵스와 구글 북스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지난해 마리사 메이어 구글 부사장 휘하엔 소프트웨어 개발자만 2000명, 관리하는 제품만 150개였다.

검색 박스만 달랑 있는 구글 초기 화면을 디자인한 인물이 메이어다. 복잡한 포털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휑하기만 한 구글 초기 화면을 두고 메이어는 폰트 명도, 채도까지 따졌다. ‘구글의 잡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구글 검색 결과를 산세리프체로 바꾸는가 하면, 구글 툴바에 쓸 파란색으로 41개 서로 다른 채도의 색깔을 몽땅 테스트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의 완벽주의와 데이터 우선주의에 넌더리가 난 구글 직원도 적지 않다. 미국 정보기술 잡지 와이어드는 ‘명석하지만, 같이 일하기 어려운 상사(Brilliant Bastards: The Toughest Tech Bosses Who Haven’t Been Fired Yet.)’ 중 한 명으로 메이어를 꼽았다. 한 구글 지원자가 거시경제학에서 유일하게 C 학점을 받은 성적표를 보고 메이어가 한마디 했다고 한다. “우수 학생들은 모든 분야에서 다 잘하는데요.” 실리콘밸리에서 깐깐하고 꼼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악명이 높다.

◆ 텅텅 빈 주차장을 보고 "야후병 고치겠다"

지난 3월 야후 CEO로서 메이어가 내놓은 방침은 야후는 물론 미국 사회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야후는 재택 근무를 전면 폐지한다. 6월 1일까지 모두 회사에 출근해 일해라." 야후 직원들은 물론이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과 리처드 브래든슨 버진 회장이 공개적으로 야후 정책을 비판했다. 모린 다우드 뉴욕칼럼니스트는 "그는 실리콘밸리의 스타이넘(유명한 여성 운동가)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스탈린(독재자)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뿐인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불편한 반응을 내놓았다. 그는 메이어가 잘못된 여성 역할관을 심어줄까 우려했다. 짧은 출산 휴가도 그렇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한 재택 근무를 원천 봉쇄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메이어도 할 말은 있다. 어느 날 오후 야후 주차장에 들어선 메이어는 텅텅 빈자리를 보고 열을 받았다. 구글에선 늘 주차할 곳이 없어 헤매기 일쑤였는데 야후 직원들은 재택근무나 외근을 핑계 대며 오후 시간이면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일명 ‘야후병’이다. 그는 목표의식도 사기도 없으면서 관료주의는 팽배한 망해갈 기업의 징조를 주차장에서 확인했다. (야후코리아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야후엔 재택 근무를 하면서 사실 창업을 준비하는 도덕적 해이도 만연해 있었다.

메이어는 야후병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늙은이 취급을 받는 인터넷 기업의 회생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것은 벤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 야후 인사 담당의 메시지를 보면 메이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최고의 결정과 인사이트는 복도에서, 카페테리아 토론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서, 즉흥적인 회의에서 나온다.”

대신 메이어는 구글처럼 야후 카페테리아에서 맛난 점심을 공짜로 제공한다. 자신은 사무실 옆에 개인 돈을 들여 탁아 시설을 짓고 있다. 이제 5개월 된 아들을 회사에서 돌보기 위해서다.

메이어는 야후 홈페이지를 4년 만에 개편했다. 기존 홈페이지는 정보가 많고 복잡했지만 개편한 홈페이지는 뉴스만 전면에 내세웠다.

◆ 메이어의 마법은

일단 야후 주가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그가 야후에 합류할 당시 회사 주가는 15달러 수준이었는 데 50%가량 올라 현재 23달러에서 거래 중이다. 새로운 야후 전략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기대 심리와 다소간의 실적 개선으로 주가가 오른 것이다. 미국 월가는 야후의 '빅딜'을 보면, 메이어의 야후 전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야후가 조만간 대형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이라는 점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야후는 중국의 온라인 유통업체 알리바바의 지분을 매각해 60억 달러를 손에 쥐고 있다.

그래도 최근 메이어의 행보를 보면, 전략 1순위는 모바일이 분명해 보인다. 모바일 주도권을 잡는 데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자신도 돈키호테식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직의 변을 모바일에서 찾는다. 우선 야후 홈페이지를 4년 만에 바꿨다. 뉴스만 앞세운 단순한 홈페이지는 모바일 서비스에 꼭 들어맞는다. ‘포털 야후’ 특징이었던 각종 콘텐츠는 첫 화면에서는 과감하게 정리했다.

“온라인에선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모바일에선 얼마든지 경쟁자를 앞서 갈 수 있다. 아직 휴대전화로 이메일을 열어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혁신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스탬프트는 메리사 마이어가 야후 사령탑으로 온 후 첫 인수한 기업이다. 스탬프트 직원들과 마이어의 인수합병후 찍은 기념사진.

빅딜은 없었지만, '스몰딜'은 많았다. 야후는 영국의 17세 개발자 닉 댈로이시오가 만든 섬리(Summly)도 3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섬리는 뉴스를 3줄로 요약해주는 아이폰용 앱으로 유명하다. 야후 모바일 서비스에 섬리가 통합될 예정이라고 한다.

모바일 퍼스트 전략은 '개인화 전략'으로 이어진다. 모바일 시장의 성패는 개별 사용자에 얼마나 최적화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느냐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야후가 최근 인수한 스탬프드(Stamped), 프로펠드(Propeld), 자이비(Jybe) 등은 모두 개인 취향에 맞는 영화나 음악, 책을 추천해주거나 위치 기반 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개발한 회사다.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s)은 언제나 불편합니다. 그런데 그 길을 열어두는 것이 유일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더군요."

구글 시절 전직 동료이기도 한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부사장이 만든 여성 멘토 사이트 '린인(leanin.org)'에서 메이어가 한 말이다. 메이어는 대학 입학할 때까지 컴퓨터 마우스도 제대로 쓸 줄 몰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