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민행복기금이 29일 공식 출범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축사를 통해 "국민행복기금이 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에게 행복으로 가는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출범 전 제기됐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이나 앞으로 발생할 채무 불이행자와의 형평성 등 논란이 해소되지 않아 졸속 시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을 총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는 최근 세부계획을 발표하면서 8000억원 규모로 출범하면 최대 66만명(저금리 전환대출 포함)의 채무를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18조원 규모로 322만명에 달하는 채무 불이행자의 채무를 조정하겠다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대폭 줄어든 것이다.

금융위는 대통령 공약과 비교해 대상 숫자가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오자 "다른 신용회복 프로그램으로 채무 재조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빚 탕감을 기대하고 연체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추가 프로그램은 없을 것"이라며 상반된 입장을 내놓고 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와 대통령 공약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국민행복기금의 졸속 우려는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가계부채 문제를 새 정부 출범 뒤 즉시 해결하겠다"고 언급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가계부채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속도전만 강조한 것이다. 금융위도 지난달 구체적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3월 중 출범하겠다"고 먼저 발표하고 난 후 금융기관들과 부랴부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출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표가 필요한 정치인에겐 달콤한 수단이지만 시장원리의 근간(根幹)을 흔드는 일이다. 시장에는 이미 국민행복기금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퍼지면서 가계대출 연체율이 6년여 만에 최고치로 높아졌다.

국민행복기금이 시장에 허튼 기대감을 주지 않으려면 정부는 대통령 공약을 수정해서라도 추가 대상자가 없다고 더 확실하게 못을 박아야 한다. 국민행복기금이 대통령 당선 축하용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채무조정 이후까지 대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